中 헤지펀드발 AI돌풍, 딥시크가 챗GPT와 대적하게 된 비결은?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입력 : 2025.02.04 15:43:39
中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의 혁신적 AI 전략
토종 젊은 인재 적극 채용해 창의성 극대화
기존 주류 방식 탈피, 비주류 접근법 채택
자율성과 개방성으로 AI 혁신 가속화
안정적 헤지펀드 재원이 기술발전 원동력
창업주 량원펑의 괴짜력도 발전에 한몫

韓은 IT대기업들 혁신부재 수년간 이어져
티맥스그룹 박대현 회장, 슈퍼앱 도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현재 개발사 권고사직


중국의 딥시크와 미국 오픈AI의 챗GPT [AFP = 연합뉴스]


‘中 AI 스타트업이 美 빅테크보다 효율적인 AI를 만들었다고?’

올해 1월 전세계를 달군 이슈가 바로 中 AI스타트업 딥시크의 약진입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유치한 미국 AI혁신기업 오픈AI가 챗GPT를 내놓은 것이 2022년 11월입니다.

그 이후 2년 2개월이 지난 현재, 전세계는 ‘AI 물결(Wave)’이 급속도로 확산했습니다. 엔비디아의 성공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모든 것은 ‘큰 자금’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AI는 곧 전(錢·돈)의 전쟁”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입니다.

글로벌 1위 국가인 미국, 그 중에서도 미국의 핵심 자원(돈과 인력)이 몰리는 미국 빅테크가 AI판을 주도하니 생겨난 말이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우리 돈 800조원에 달하는 AI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빅테크로 대변되는 실리콘밸리의 성공방정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VC(벤처캐피탈)로부터 펀딩을 받아서 사업을 만든 뒤에, 글로벌 경영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실적을 내면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합니다.

해당 현금을 다시 재투자하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제적 해자(장벽)’을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빅테크들은 자사주식을 할인해서 임직원에게 보상하는 RSU 제도 등을 운용하며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직원들은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게 됩니다.

엔비디아 테슬라 등 주가가 최근 몇년 새 급등한 기업들의 경우, 수십억원서 많게는 백억원대 이상 돈을 만지게 된 직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실리콘밸리 드림’이 생겨난 이유입니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꿈 많은 외국인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았습니다.

이는 미국만 가능한 방식이라 여겨졌습니다.

유럽 중국 일본 등 다른 경제대국들은 이 같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제국(濟國)’의 포용성이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중국 한국서도 IT대기업이 있지만(알리바바 바이두, 네이버 카카오 등) 미국 빅테크와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투자량과 혁신은 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빅테크 전지전능설’에 반기를 든 사람이 나타납니다.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앞줄 오른쪽)이 지난 1월 20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주재한 전문가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국 CCTV 캡처


바로 중국 AI스타트업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梁文鋒)입니다.

그는 중국 테크전문지인 차이나톡(ChinaTalk)과의 인터뷰에서 “투자량과 혁신은 비례하지 않는다”라며 미국 빅테크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딥시크가 올해 초 내놓은 추론모델 R1은 오픈AI 보다 최대 30분의 1가량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오픈AI와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추가적인 기술적 검증은 필요하지만, 만일 이 부분이 실현화되면 글로벌 AI산업이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기존에 AI 도입비용이 비싸서 접목하기를 꺼려했던 많은 기업이 딥시크 모델을 기반으로 AI혁신에 나서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챗GPT를 포함한 미국 빅테크의 경쟁력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죠.

미국 빅테크가 많은 돈을 투입해 AI에 투자하는 것이 ‘비효율적’이 되는 겁니다.

특히 딥시크가 혁신적인 부분은 이를 모두 오픈소스로 배포한다는 점입니다.

즉, 당장의 영리적 목적보다는 AI생태계를 딥시크발로 형성하겠다는 목적이 강합니다.

챗GPT를 비롯한 구글의 제미나이 등이 핵심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죠. 한마디로 미국 빅테크의 아성을 무너트리는 행보라 볼 수 있죠.

中 토종인재들이 美주류와 다른방식을 구현
량원펑의 인생을 들어보면 그가 AI업계 ‘주류’에 해당하는 미국 빅테크와 얼마나 다른 행보를 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85년생인 그는 2007년 중국 항저우의 공학 분야 명문대 저장대학교 전자정보공학과에 입학했고 석사까지 마칩니다.

그 이후 량원펑은 지난 2015년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를 설립합니다.

하이플라이어는 통계학, 수학 등에 기반한 금융투자 ‘퀀트 트레이딩’을 주로 하는 헤지펀드입니다.

헤지펀드란 기관투자자·고액자산가로부터 돈을 유치한 뒤, 롱숏 전략 등을 통해 돈을 버는 펀드를 말합니다.

하이플라이어는 AI로 자동화된 투자기법을 만들면서 퀀트 트레이딩에 주로 나섰고, 중국 증시가 2018년 이후 부진한 가운데도 2배 이상 수익률(외신 종합)을 기록하면서 중국 헤지펀드 업계의 ‘빅4 중 하나’로 급부상합니다.

현재 하이플라이어의 운용자산은 약 80억 달러(약 11조6000억원)에 이르죠.

하이플라이어의 투자안내서를 살펴보면, 하이플라이어는 운용자산의 약 2%를 운용수수료로 받고, 시장 기준수익률보다 더 초과로 수익을 낼 경우 초과수익의 25%를 얻습니다. 임직원은 30여명 내외로 추정됩니다.

량원펑


헤지펀드인 하이플라이어의 정확한 매출액과 이익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만 운용수수료만 한 해 약 2000억원 이상 벌어들일 것으로 추정되며, 성과보수까지 합하면 그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량원펑은 ‘중국 빅4 헤지펀드’를 창립하며 돈방석에 앉은 겁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돈보다는 더 큰 가치’를 보게 됩니다. 그게 바로 지난 2023년 만든 스타트업 딥시크입니다.

량원펑은 외국 유학파가 아닌 중국 본토대학 출신의 갓 졸업한 학생과 1·2년 정도의 경력만 있는 사람을 약 180여명 채용하며, 오픈AI에 필적하면서 더 가성비 있는 AGI(일반인공지능)을 만드는 안을 착수합니다.

량원펑은 “저희 채용 기준은 항상 열정과 호기심이었다”라며 “돈을 벌기 이전에 연구에 대한 열망을 우선시하는 직원을 채용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파·빅테크 경험 출신들의 주류적 시각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다른 접근을 해서 ‘창조’를 이뤄내기 위해 토종 출신들을 주로 채용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모든 직원은 GPU 리소스에 허락 없이 접근할 수 있으며, 이들을 지배할 ‘규칙’도 없습니다. 오직 AGI를 목표로 뛰는 사람들을 채용한 것이죠.

딥시크 운용비용은 하이플라이어로부터 충당했습니다. 앞서 밝혔듯이 하이플라이어 운용만으로도 매년 최소 수천억원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번에 세상을 놀라게한 R1 추론모델 개발비용은 우리돈으로 불과 78억원(558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오픈AI의 o1 개발비용이 1400억원(1억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개발비용도 20분의 1 수준입니다.

韓도 박대연 티맥스그룹 회장 도전 있었다
아직 딥시크의 성공이 실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딥시크의 접근방식, 즉 다윗이 골리앗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첫째, 기존방식과 다르게 하는 과감한 도전정신. 둘째, 주류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시도를 과감하게 해보는 창의성. 셋째, 응용모델에 집중하기보다는 기본에 더 충실하게 접근하자는 것. 넷째, 자유로운 연구와 혁신을 위한 안정적인 재워마련 등입니다.

사실 국내 IT업계에서도 이 같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국판 오라클을 만들었다고 여겨졌던 티맥스그룹의 박대연 회장이 그 주인공이죠.

그는 지난 15년 간 약 1조1000억원이란 막대한 돈을 투입하며 ‘슈퍼앱’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한 개의 앱에 모든 기능이 들어가 있고, 이 기능을 구현시킬 운용체제 등도 갖춰진, 꿈의 기술이자 게임체인저(Game Changer)격인 앱을 말이죠.

박대연 티맥스그룹 회장


물론 그의 실험은 현재까지 봤을 땐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습니다.

박 회장은 막대한 R&D자금을 대기 위해 사모펀드에게서 돈을 차입해왔고, 그렇게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 지난해 말 티맥스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티맥스소프트(기업용 소프트웨어), 티맥스티베로(데이터베이스)의 경영권을 사모펀드(캑터스PE·스틱인베스트먼트)에게 넘기게 됐죠.

그나마 남은 슈퍼앱 개발사인 티맥스A&C는 권고사직 등을 거치며 한때 1200명에 달했던 임직원을 250여명까지 줄였습니다.

박 회장의 티맥스A&C와 량원펑의 딥시크 모두 ‘미국 빅테크에 대항해보자’는 취지는 같았습니다.

다만 박 회장은 자금을 외부(사모펀드)로부터 수혈했지만, 량원펑은 외부 펀딩을 받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량원펑은 차이나톡과의 인터뷰서 “어떤 VC(벤처캐피탈)가 우리에게 투자하겠냐?”고 되려 반문합니다. 아직 돈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에 VC가 함부로 돈을 넣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재원마련과 더불어서 티맥스A&C는 12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조직이었던 반면, 딥시크는 180여명에 불과한 소규모 조직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 빅테크에 이겨보려고 했지만, 티맥스A&C 역시 어떤 사람들이 보기엔 ‘등 따스운 대기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국내 소프트웨어 대기업인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해 AI대기업인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이 이렇다할 AI혁신을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죠.

티맥스 박 회장의 좌초를 두고, 한 AI 전공 박사는 ‘국내 IT업계 낭만의 몰락’이라고도 했습니다.

해당 관계자는 “티맥스그룹에 과거엔 카이스트 포항공대 SKY공대 등이 주로 병역특례요원으로 갈 정도로 유망한 회사였고, 많은 뜻 있는 젊은이들이 향했던 곳”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량원펑은 동료들 사이에서 ‘괴짜’로 불렸다고 합니다. 한명의 괴짜가 전세계 AI판을 뒤흔드는 소식을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에도 필요한 것은 괴짜, 그리고 이 괴짜들이 ‘한 번 일내보겠다’라고 하는 환경 아닐까요? 제2의 량원펑, 박대연이 한국에 다시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2.04 17:41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