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관세에 본전도 못 찾아”...韓기업, 업종 안 가리고 ‘탈중국’ 러시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입력 : 2025.07.11 18:54:56 I 수정 : 2025.07.11 23:45:07
中내수침체·경쟁심화·원가상승에
미국發 대중국 제재까지 겹쳐
생산기지로서 매력 사실상 상실
반도체·이차전지·자동차 등
韓기업 생산거점 줄줄이 미국行
지난해 韓 대미투자 223억달러
19억달러 그친 대중투자 크게 웃돌아
트럼프 ‘MAGA’에 가속화될 듯


이달 초 포스코그룹은 스테인리스강 자회사 ‘장자강포항불수강’을 중국 철강업체에 4000억원대에 매각했다. 1997년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세워진 이 회사는 한때 ‘중국의 포스코’라고 불릴 만큼 기대가 컸던 사업장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철강 자립화 전략에 따른 공급과잉과 저가 경쟁으로 연간 1000억원 넘는 적자가 이어졌다. 중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 포스코그룹은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거점 확대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속속 중국을 떠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법인 베이징현대는 2021년 베이징 1공장, 지난해 충칭공장을 매각했고 현재 창저우공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도 지난해 중국 기업과 합작으로 설립한 SB라텍스 사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탈중국 행렬에 가세했다.

11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지난해까지 중국 사업을 정리하거나 축소한 우리나라 대·중견기업은 40여 곳에 이른다. 특히 일부 유통업체에 국한됐던 탈중국 움직임은 최근 들어 자동차와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 내 판매 부진과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 제고로 인한 경쟁 심화, 중국 내 생산 원가 상승, 인력난 등을 어려움으로 꼽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현대의 매출은 3조3116억원으로 2016년 20조1287억원 대비 83.5% 줄어들었고, 지난해 현대차의 중국 판매량은 12만5000대로 시장 점유율이 0.6%에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강화된 대중국 제재로 경영 환경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현재 30%지만 미·중 협상 결과에 따라 최대 145%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주요국을 대상으로 대중국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화장품같이 중국 시장이 최종 소비자가 되는 경우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중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해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하는 기업은 애로를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신규 대중 투자를 자제하고 기존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업들의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의 해외 투자액은 대폭 변화하고 있다. 2005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중국 투자액은 29억2000만달러로 전체 해외직접투자액의 39.1%에 달했다. 하지만 중국 투자액 비중은 2010년 10%대로 하락한 뒤 작년엔 3%까지 추락했다.

그사이 미국에 대한 투자액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5년 70억5000만달러였던 대미 투자액은 지난해 222억9000만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대중 투자액은 30억1000만달러에서 19억2900만달러로 급감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대중 투자액과 비슷한 규모였던 대미 투자액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대중 투자액과 차이를 11.6배까지 벌렸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따라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는 현대제철과 함께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일관제철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LS전선은 지난 4월 약 1조원을 투자해 미국 최대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장을 착공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 3월 정의선 회장의 백악관 방문을 계기로 향후 4년간 미국 내 210억달러(약 28조6000억원) 규모의 추가 신규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최지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 전문연구원은 “한국의 해외 투자가 반도체, 2차전지, 전기차 등 미·중 갈등의 대상 업종에 집중된 가운데 이들 업종의 해외 투자 대상 지역이 중국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글로벌 환경의 불확실성과 중국 경제 성장 둔화 등으로 한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는 장기 침체기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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