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신뢰·주주권익 해치는 '쪼개기 상장' 선 넘어…막을 해법 없나

외환위기 때 지주회사제 도입으로 촉발…해외법인 현지 상장 등 새 유형까지 기승중복상장률 세계 평균 한참 벗어나…상법 주주충실의무·주총승인 의무화 등 대안 거론
김태균

입력 : 2025.04.20 07:10:06


한국 증시 [자료 사진]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중복상장이 개별 기업의 편법경영 논란을 넘어 만년 저평가 상태인 한국 증시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관련 해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중복상장 이슈의 뿌리는 1997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연쇄 파산 위험이 컸던 국내 재벌기업들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대기업 구조조정을 돕자는 취지로 사내 조직을 100% 자회사로 분리하는 '물적분할' 제도가 도입됐는데, 이후 대기업들이 알짜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일명 '쪼개기 상장'을 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목적의 제도를 그룹 상장사 몸집 불리기 수단으로 쓴 것이다.

이후 해외법인을 현지 상장하는 등 새 유형까지 나타나며 중복상장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 상태다.

많은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중복상장이 기업 가치와 신뢰성을 훼손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을 부채질한다고 지적한다.

중복상장은 모기업 지배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반면 소수주주의 권익은 크게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자회사가 상장하면 모기업 지배주주는 상장 자회사에 대해서도 지배적 지분을 가진 만큼 이사 선임 등 권한 행사가 가능하지만, 모기업의 다른 주주는 상장 자회사의 운영에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다.

즉 모기업 지배주주는 타 주주의 견제 없이 상장 자회사를 움직일 수 있고, 내부거래 등을 통해 양사의 자금도 쉽게 쥐락펴락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심혜섭 부회장(변호사)은 이에 대해 "모기업 지배주주가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사실상 독점하는 만큼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의사결정을 할 공산이 크다.

자회사의 독립성도 문제가 되며, 결국 모기업과 자회사 모두의 주주가치가 훼손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업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가 왜곡되면 대외적으로 회사 가치가 계속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결국 이런 기업들이 늘어나면 우리 증시 전반의 신뢰성과 몸값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BK투자증권은 작년 11월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의 중복상장 문제에 대해 세계적으로 '평균을 벗어난 이상점'(아웃라이어·Outlier)에 해당한다고 평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계산한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18.4%로 미국(0.35%)과는 애초 비교가 어렵고, 우리나라보다 자본시장이 덜 발달한 대만(3.18%)이나 중국(1.98%)도 훨씬 앞지른다는 분석이다.

이웃 일본도 중복상장률이 4.38%에 그쳤으나, 일본 거래소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이 수치를 더 줄이려는 정책적 시도가 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이효섭 선임연구위원은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만 해결돼도 한국 주가는 30% 정도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는 중복 상장 [일러스트]
[생성 AI 챗GPT 제작]

중복상장이 대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중복상장은 대기업 지배주주(오너가)가 상장 자금을 지렛대 삼아 그룹 덩치를 늘릴 수 있는 효과가 큰 탓에 무분별한 확장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창민 경제개혁연대 부소장(한양대 경영대 교수)은 "현재 대기업의 중복상장 사례를 보면 1990년대 외환위기 전 재벌이 비관련 업종으로 문어발 확장을 하던 때가 떠오를 정도로 걱정스럽다.

중복상장으로 기업의 밸류(가치)가 샌다는 것은 많은 연구로 입증된 사실인 만큼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지금 국내법에서는 중복상장에 관한 규정이 따로 없다.

금융 당국이 정책적으로 상장 전 주주의 권익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따지지만, 이런 감시를 우회하는 방법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분분하다.

소수주주 구제책도 모기업 주주총회에서의 문제 제기 외엔 제도가 전무하다.

근본적 대책으로 상법을 개정해 중복상장을 규제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법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추가하고, 이 원칙에 따라 거래소가 상장 심사 때 중복상장을 엄격히 규제하자는 것이다.

'주주 충실 의무' 규정은 지난 달 상법 개정안에 포함돼 국회를 통과했지만,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정부의 거부권(재의요구권)이 행사돼 도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중복상장을 모기업 주주총회의 의결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해법도 거론된다.

지배주주의 독단을 방지하기 위해 애초 '소수주주 다수결제도'(MOM)로 중복상장안을 표결하게 만들자는 주장이다.

금투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회사 상장은 사례별로 보면 여러 경영적 요인이 얽혀 있어 '총수 사익 추구' 문제로 단순 접근하는 것도 일부 무리가 있다.

주식매수 청구권이나 신주 우선 배정 등 소수주주 보호 대책부터 논의를 시작해 기업가치 제고란 목표 아래 현실적 대책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ta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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