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볼지도] 임박한 위험, 꿀벌이 사라진다

이상고온·해충·살충제 등이 주요 원인…월동 폐사율 20% 웃돌아세계 농작물 생산량의 35% 담당하는 꿀벌 사라지면 '식량위기'농진청·학계, 신품종 육종·사양관리 기술 개발 '구슬땀'
김진방

입력 : 2025.07.12 07:11:00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김제 양봉농가 꿀벌
[촬영 김진방]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 멸종할 것이다.' 1965년 브뤼셀에서 열린 프랑스 양봉가들의 '농약 사용 반대 캠페인'에서 처음 인용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의 이 발언은 꿀벌이 인류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이 직접 이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게 학계의 주된 의견이지만, 실제 꿀벌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진위를 떠나 크게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공급의 약 90%를 담당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이 꿀벌의 수분 작용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 농작물 생산량으로 환산하면 전체의 약 35%를 꿀벌이 담당하는 셈이다.

최근 들어 꿀벌이 갑자기 집단 실종됐다는 소식이 국내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들려온다.

꿀벌이 인류 생존에 기여하는 바를 생각하면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와 꿀벌응애 등 해충 피해를 꿀벌 집단 실종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벌통 안을 들여다보는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부회장
[촬영 김진방]

◇ 사라지는 꿀벌들…양봉 농가는 '막막' 인류 생존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꿀벌이 정말로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로완 제이콥슨이 쓴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이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2006∼2007년 미국 전역에서 꿀벌 집단이 갑자기 사라진 '군집붕괴현상'을 배경으로 쓰였다.

책에서 꿀벌 실종 현상은 곧바로 농업과 식량 위기로 이어진다.

제이콥슨은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세계 최대 규모인 플로리다의 감귤 농업이 15년 후까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꿀벌이 겨울을 난 뒤 사라지는 사례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를 비롯해 유럽, 아시아, 중남미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에 따르면 2006∼2007년 미국에서 발생한 군집붕괴현상으로 미국 겨울철 벌통 손실률은 약 32%를 기록했다.

2009년 스위스에서도 겨울철 벌집 손실률이 50%를 기록하며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꿀벌 실종 사건이 두 차례 발생했다.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토종벌 65%가 폐사했고, 최근인 2022년 월동을 마친 꿀벌 176억 마리가 '집단 실종'됐다.

2022년 발생한 꿀벌 집단 실종으로 전체 양봉농가의 82.5%, 전체 벌통의 57.1%가 피해를 입었다.

지금 같은 추세로 이상기후가 매년 심화한다면 제이콥슨의 책 속에 등장하는 꿀벌 멸종으로 인한 식량 위기도 머지않은 미래가 될 수 있다.

47년간 김제에서 양봉을 해온 김종화 한국양봉협회 부회장은 "국내에서 월동 폐사 피해가 가장 심했던 2022년 가을 기온이 평년보다 높은 이상기후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상기후가 지속하면서 10여년 전 10% 안팎이던 월동 폐사율이 최근 몇 년간 20%를 상회하고 있으며, 매년 초보 농가를 중심으로 피해가 확산하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꿀벌응애에 감염된 꿀벌
[농진청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이상기후·해충에 '집단 실종'…"기후변화가 근본 원인" 꿀벌 집단 실종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이상기후다.

국내에서 집단 실종 피해가 극심했던 2022년 11월 한국양봉학회 학술지에 실린 '꿀벌의 월동 폐사와 실종에 대한 기온 변동성 영향'이란 논문에서는 꿀벌 집단 실종 원인을 ▲ 10월 급격한 기온 변화 ▲ 11∼12월 이상고온 현상 ▲ 1∼2월 이상고온과 한파 등으로 분석했다.

김종화 부회장은 "이상기후로 10월 말∼11월 기온이 올라가면서 벌의 활동 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벌의 활동 기간이 길어지면 산란 기간도 늘어나 육아를 전담하는 일벌의 수명도 줄게 된다.

이는 꿀벌이 겨울을 나지 못하고 폐사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1∼2월의 이상고온도 꽃의 조기 개화를 유발하고, 꿀벌이 화분 채집에 나섰다가 벌통으로 복귀하지 못해 폐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꿀벌응애 등 해충도 꿀벌 집단 실종의 주요 원인이다.

응애는 꿀벌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는 진드기로, 6∼7월에 활발하게 활동한다.

적기에 응애를 방제하지 못하면 꽃이 완전히 질 무렵에는 벌통은 응애로 가득 차게 되고, 꿀벌은 응애에게 즙이 빨려 점점 약해지다가 월동 시기가 되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응애가 꿀벌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상기후에 있다.

기후변화로 7월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오르면 벌통 내부 온도도 올라간다.

일벌은 이 시기 자체적으로 응애를 방제하는데 벌통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벌통 밖으로 이동한다.

벌통 안에 일벌 수가 줄면 그만큼 응애 방제에도 영향을 끼쳐 집단 실종 현상이 심화하게 된다.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양봉과 연구관은 "결론적으로 집단 실종의 주된 원인인 이상기후와 꿀벌응애 발생은 모두 기후변화와 관련돼 있다"면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집단 실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농진청 꿀벌위도격리육종장
[농진청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꿀벌 육종·사양관리 기술개발 등 안간힘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가 지속하는 한 꿀벌 집단 실종은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전 지구적 차원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이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와 별개로 꿀벌 관련 연구자들은 피해 최소화를 위한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이상기후와 꿀벌응애 등에 강한 저항성을 가진 꿀벌 품종을 육종하고, 꿀벌 사양관리 기술을 개발해 이상기후 등에 대응하고 있다.

농진청은 지난 2020년 섬 지역인 부안군 위도면에 꿀벌 품종 육종을 위한 격리육종장을 설립했다.

꿀벌 육종을 위해서는 주변에 꿀벌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육지와 격리된 위도를 육종장으로 선정했다.

위도격리육종장은 꿀벌 우수품종을 육성·보급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이미 낭충봉아부패병 저항성 품종인 '한라벌'을 개발했고, 지난해부터는 꿀벌응애에 대한 저항성 품종 개발에 착수했다.

또 꿀·로열젤리·프로폴리스 등 양봉 산물 다수확 품종인 '장원벌', '젤리킹', '봉교1호' 등도 개발했다.

김동원 국립농업과학원 양봉과 연구사는 "급격한 기온 변화 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매년 반복되는 상황에서 병해충과 변칙적인 기후에 대응하는 신품종 육종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우수 품종을 보존하고, 신품종을 개발하는 연구를 지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국립농업과학원 양봉과 연구사
[촬영 김진방]

꿀벌 사양관리 기술 개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진청은 전북대학교, 강원대학교 연구진과 함께 사양관리 표준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상기후 등 예측할 수 없는 환경 변화에 대응해 우리나라에 최적화한 꿀벌 사양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김소라 전북대 식물방역대학원 교수는 "이상기후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이를 전제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집단 실종 등 꿀벌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양봉 설비를 구현해 내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벌에 치명적인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의 사용을 줄이고, 벌이 좋아하는 아까시나무 같은 밀원수를 심는 등 인위적인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chinakim@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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