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매년 10만t 이상 잡히던 오징어 이젠 5만∼6만t 수준바다수온 상승에 어군 북상…고수온 견디는 양식품종 개발 시급
김용민
입력 : 2025.06.28 07:11:00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울릉도 도동항에서 건조 중인 오징어 [연합뉴스 자료사진]
(울릉=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40년 넘게 배를 탔는데 바다가 점점 더워져서 그런지 갈수록 오징어 구경하기가 힘드네요.
오징어잡이를 그만둘까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잡는 어부 김모(67)씨는 계속 배를 타야 할지 고민스럽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불과 20여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은 격세지감이란 말을 절감한다고 했다.
매년 가을에서 초겨울에 이르는 오징어 성어기에는 바다에 나가는 족족 어선 가득 오징어를 채워서 항구로 돌아오곤 했다.
밤새 낮처럼 환한 집어등을 켜놓고 작업을 하느라 피곤할 수밖에 없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끊임없이 뱃전으로 잡혀 올라오는 오징어를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피로도 금세 잊을 수 있었다.
김씨는 "그렇게 가족을 먹이고 입혔고 자식들을 고등학교, 대학교엘 보냈다.
울릉도 근해에서만 오징어가 한 해 1만t 가까이 잡히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울릉도에서 오징어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배가 200척이 넘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면서 한 해 울릉도 근해에서 잡힌 오징어는 2천t 수준으로 급감했고 급기야 2016년께는 700t대로 주저앉으면서 조업을 포기하는 어선이 속출했다.
울릉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징어 채낚기 어선 [연합뉴스 자료사진]
◇ 급감하는 오징어 생산량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오징어 생산량은 1990년대 이후 매년 10만t 이상을 유지하다 2017년에 10만t 아래로 떨어졌으면 2020년대 들어 연 5만∼6만t 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렇듯 최근 들어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줄면서 가격이 급등해 이젠 '금징어'라는 말이 보편화하는 양상이다.
지난 3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조사한 연근해 신선 냉장 오징어의 평균 산지 가격은 ㎏당 9천511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3.4% 올랐다.
어획량이 줄어드는 어종은 오징어뿐이 아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갈치(-26.6%), 꽃게 (-23.3%), 멸치(-18.8%), 삼치류(-16.8%), 붉은 대게(-9.9%), 가자미류 (-6.2%) 등이 한 해 전보다 생산량이 줄었다.
오랜 세월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던 수산물 중에 지금은 사실상 사라진 명태의 운명을 답습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오징어 등의 어획량 감소는 남획,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등이 한몫하고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울릉도 근해 오징어 잡이 [연합뉴스 자료사진]
◇ 기후 변화에 바다 수온 상승…조업환경 악화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특히 여름철 장기 폭염이 이어지면서 바닷물 온도가 유례 없이 높아졌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바다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8.74도로 최근 57년간(1968~2024) 관측된 수온 중 가장 높았다.
한 해 전인 2023년에 기록한 역대 최고 기록(18.09도)을 불과 1년 만에 0.65도 차로 갈아치운 것이다.
해역별로는 남해 20.26도, 동해 18.84도, 서해 17.12도 순이었다.
이렇듯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물고기들이 수온이 적당한 곳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결국 오징어 등이 점점 북쪽 바다로 떠나면서 어군 형성이 안 돼 점점 고기잡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고유가가 이어지면서 배를 타고 조업을 나가는 비용이 커지는 등 조업 효율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23년 11월 오징어 어획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울릉도 어민에게 선박 한 척당 최대 2천만원까지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러 차례 지원에 나섰으나 좀처럼 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고공 행진하는 오징어 가격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고수온 등의 기후변화 영향으로 어획량이 줄어들며 오징어와 고등어, 명태, 마른 멸치 등 밥상에 오르는 수산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오징어의 작년 생산량은 1만3천500t으로 전년보다 42% 줄었다.사진은 3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 오징어가 진열돼 있다.2025.3.3 ksm7976@yna.co.kr (끝)
◇ 고수온 내성 양식품종 개발 등 대비 필요 문제는 단순히 특정 어종이 줄어드는 데 머물지 않고 근본적으로 바다의 '기초 생산력'이 감소하고 있다는 데 있다.
기초 생산력은 식물 플랑크톤이 광합성으로 유기 화합물을 생산하는 능력을 말하며 바다 생태계의 중요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동해 연안에서 해양 온난화로 인해 바닷물 표층 수온과 저층 수온 간 차이가 커지면서 수층 간 영양염, 산소 등 물질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22년간 매년 0.3%가량 줄어든 가운데 지난해 기초생산력은 최근 6년(2018~2023) 평균보다 약 13% 감소했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 하면 우리나라 인근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기후 변화를 주시하고 수산물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우리 바다의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 만큼 고수온에 내성을 가진 양식 품종을 개발하는 등 수자원 감소를 막는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