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자신들이 집권할 경우 공공기관 평가 체계를 수술하려는 것은 정권 교체기마다 ‘알박기 인사’ 문제가 반복돼 왔다는 판단에서다. 이같은 알박기 관행은 국민의힘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대동소이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은 정부의 국정 기조에 맞춰 국민에게 보편적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 임기가 일치하지 않다보니 정부와 공공기관의 손발이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관 전문성과 거리가 먼 인사를 공공기관장에 임명하는 ‘보은 인사’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2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작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날까지 게재된 공공기관 임원모집 공고는 모두 114건에 이른다. 최근 한달로 좁혀봐도 신용보증기금, 울산항만공사, 한국농업기술진흥원, 한국국제협력단, 국립해양박물관 등 12개 기관이 공고를 냈다.
또 같은 기간 공고가 나간 뒤 선임까지 이어진 공공기관장은 4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난달 4일 이후 임명된 기관장은 9명이다. 전체 331곳에 달하는 공공기관장 가운데 15%가 최근 반년 간 국정 혼란기에 신규 선임된 셈이다.
앞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 2일부터 대통령 권한대행 직에 오른 직후 정정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신임 사장을 임명하자 민주당이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선대위는 집권시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과 ‘불편한 동거’가 상당기간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에도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일부 공공기관장이 자진 사퇴를 거부하면서 크고작은 충돌이 빚어졌다. 또 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 임명이 지연되면서 현직을 유지하는 기관장도 스무명을 웃도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후보 선대위가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는 방안을 10대 공약의 2순위로 올린 데는 이같은 문제 인식이 반영됐다고 한다.
선대위 관계자는 “공공기관장 임기 문제는 누구든 손질을 하지 않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가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선대위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공공기관장 별도 평가 체계 부활과 공공기관 평가 주체를 기획재정부에서 각 부처로 이관하는 방안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우선 박근혜정부 당시인 2014~2017년 사이 진행된 공공기관장 평가 카드를 다시 꺼내는 것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에게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공기관장에 대한 평가는 각 기관 경영평가 때 하위 항목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평가단이 기관장과 면담을 해서 비전 등을 듣고 점수를 매기지만 이 점수가 공개되지는 않는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정부 측과 외부 전문가들이 적절히 배합된 공공기관장 전문 평가 기구를 설치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평가 항목에는 단순 경영실적 외에 정부의 국정기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등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기관장 평가를 별도로 하겠다는 것은 기관장 개인의 정치 성향이나 평판을 더 엄밀하게 평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인사에 대한 ‘징벌적’ 평가까지 가능해지는 셈이다.
아울러 공공기관 평가를 기재부에서 각 부처로 이관하는 방안도 결과적으로 기관장 평가 강화로 이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무 부처가 직접 나설 경우 전문성이 반영된 강도높은 평가가 이뤄질 수 있어서다. 이같은 평가에서 ‘아주 미흡’ 등 평가가 나오면 장관이 산하 기관장 해임 건의를 하는 방식으로 기관장 교체에 나설 수 있다.
그간 331곳의 공공기관 중 규모가 크고 국민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업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은 기재부가 나서서 매년 종합 성과를 ‘탁월(S)’부터 ‘아주 미흡(E)’까지 6개 등급으로 평가해 왔다.
다만 이같은 평가체계 개편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소관 부처가 아닌 기재부가 평가를 해온 것은 이해관계가 적은 제3의 기관이 나서야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를 부처 단위로 이관할 경우 산하 기관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경영평가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각 부처는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이고, 소관 부처가 담당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를 하면 점수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공공기관장 평가를 별도로 하면 전체 기관이 공공기관장 평가에만 몰두하는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 과거 공공기관장 평가를 따로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기관장 평가용 자료를 만드는 데 인력이 과도하게 투입돼 본 업무에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고 한다.
공공기관 평가 권한을 각 부처로 분산하는 안을 민주당이 추진해오던 기재부 ‘힘빼기’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기재부가 수행하던 예산편성을 대통령실로 넘기는 안이 논의되는 가운데 공공기관 평가 권한까지 각 부처로 넘기면 남는 건 세제와 국제금융 정도로 기능이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가 기획재정부에 지나치게 종속돼 있다”며 “(지금은)정권에 따라 평가 지표를 자의적으로 변경하고, 평가위원 100여 명 전원을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촉하는 등 기획재정부가 평가 전반에 직접적이고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