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앞에 버젓이 전자담배 자판기…규제공백에 합성니코틴 확산
액상 전자담배 무인매장·온라인 판매 확산…허술한 성인 인증기재부 "담배로 포함해 즉시 과세해야"…국회 논의 진전 없어복지부 "합성니코틴 인체에 유해"…주요국,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규제
김윤구
입력 : 2025.05.11 06:35:00
입력 : 2025.05.11 06:35:00

[촬영 김윤구]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지난 9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전자담배 매장.
무인 매장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자동판매기가 인도 앞에 노출돼 있었다.
이 자판기 앞에서 대로를 건너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3개 학교가 몰려있다.
서울 마포구의 다른 전자담배 매장도 비슷하다.
'24시 무인 전자담배'라는 네온사인이 켜진 이 매장은 최근 한 중학교에서 불과 100m도 안 되는 거리에 들어섰다.
인근에는 이 중학교를 포함해 초·중·고등학교가 7곳이나 돼 자녀들이 악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하는 학부모도 있다.
이들 매장은 직원을 두지 않고 자판기로 전자담배를 판매하다 보니 자판기에서 신분증을 스캔하는 방식으로 성인인증을 하지만 절차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도 성인 인증 통과에 문제가 없었고 신분증을 인쇄한 종이를 갖다 대도 성인 인증에 성공하기도 한다.
교육환경법상 학생의 보건·위생, 안전, 학습과 교육환경 보호를 위해 학교에서 200m 이내 '교육환경 보호구역'에서는 담배 자판기가 금지된다.
그러나 합성니코틴(화학물질을 합성해 인공적으로 제조한 니코틴)을 주로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현행법상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어 관련 시설이 초·중·고등학교 근처에도 들어서 이처럼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촬영 김윤구]
현재 담배사업법상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한 것만 대상이어서 합성니코틴은 법망을 피해 담뱃세와 부담금이 부과되지 않고 온라인 판매 제한 등의 규제도 받지 않는다.
전국에 40개 넘는 무인 전자담배 가맹점이 있는 업체의 본사 관계자는 "매장은 주로 술집 상권에 있지만 학교 근처에 매장을 내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자동판매기에서 부모 신분증 등을 이용해 손쉽게 합성니코틴을 사용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구입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액상 전자담배는 온라인에서도 많이 판매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의 주류 구매 가능성 등 때문에 온라인 주류 판매가 원칙적으로 금지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청소년건강패널조사를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는 일반담배(궐련) 흡연의 관문 역할을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자담배는 액상형과 궐련형으로 나뉘는데, 실제 액상형이 청소년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대부분 합성니코틴을 사용하는데 담뱃세와 부담금 등 과세 대상이 아니어서 가격이 궐련형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해 청소년 입장에선 경제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촬영 김윤구]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액상 전자담배는 전체 담배 시장의 10∼20% 규모로 커졌는데 전혀 규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며 "청소년 사용자가 많은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의 모양이 스마트워치 등 다양하고 딸기, 포도 등 향을 첨가했기 때문에 청소년이 부모나 교사의 눈을 피해 사용하기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청소년 흡연율은 정부 통계보다 훨씬 높다"며 "학교에 강연을 하러 가면 흡연율이 50% 정도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액상형 전자담배에 들어가는 합성니코틴을 담배사업법상 '담배'에 포함해 규제해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된 지 몇 년이 지나면서 규제 공백 상황이 장기화하고 있다.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 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합성니코틴이든 천연니코틴이든 궐련형 담배 등 담배사업법의 담배의 정의에 포함해 같이 관리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합성니코틴에 대해 즉시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또 연구용역을 거쳐 합성니코틴도 천연니코틴과 마찬가지로 유해물질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인체에 유해하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소위원장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소매업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국 규제 법안은 소위 벽도 넘지 못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규제 공백으로 걷지 못한 합성니코틴 담배 관련 제세부담금은 2023년 기준 1조1천억원이 넘는 수준이다.
이미 여러 주요 선진국은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규제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담배 정의에 합성니코틴도 포함해 식품의약국(FDA)이 규제한다.
33개 주가 전자담배에 소비세를 부과하고 있다.
영국은 2026년 10월부터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해 소비세를 과세할 예정이다.
호주는 지난해 7월부터 니코틴 함유와 관계 없이 전자담배는 약국에서만 판매한다.
입법조사처는 "합성니코틴 기반 전자담배의 사용으로 인체가 니코틴에 중독돼 연초 니코틴 기반 전자담배 또는 궐련담배 사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면서 "합성니코틴 규제와 과세를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ykim@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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