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업 주가 향방이 불확실한 요즘 확실한 건 국내 주식이 미리 하락해 미국 주식보다 저평가됐다는 것이다." 25일 매일경제신문이 '서울머니쇼 2025'(5월 8~10일·서울 코엑스)에 등장할 주식 고수 5인방에게 물어보니 오랜만에 이처럼 '의견 통일'을 봤다. 남석관 베스트인컴 회장,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 노근창 현대차증권 전무, 염승환 LS증권 이사 등은 그동안에도 '동학개미 전도사'였다.
이번 머니쇼에서 '서학개미'(해외 주식 투자자)를 위한 세미나를 여는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위원조차 "국내 주식은 예상 가능한 악재를 모두 반영한 주가 수준"이라며 "올해 내내 저가 메리트(매력)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놓고 중국과 정면 대결 양상이고, 기준금리와 관련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미국 주식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점을 반영한 전망이다.
5대 고수는 이런 이유로 눈치 빠른 '큰손'들이 이미 국내 주식으로 '유턴'했다고 보고 있다. 올해 예상 실적을 기준으로 국내 주식이 미국 주식보다 훨씬 저렴한 데다 달러 약세(원화 강세)까지 겹치며 당분간 이 같은 '머니 무브'(미국→한국)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미국은 트럼프발 위험(리스크)이 여전한반면 국내의 경우 정치적 불확실성이 서서히 걷히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주식, 바로 지금이 투자하기 좋은 계절"
노근창 전무는 "올해 들어 미국 주식이 하락했어도 여전히 한국 주식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매력이 더 넘친다"며 "저평가와 달러 약세,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등이 맞물려 오랜만에 모든 변수가 국내 주식시장에 우호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염승환 이사도 구체적인 실적 대비 주가 지표를 제시하며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릴 때라고 강조했다. 염 이사와 노 전무 모두 대선 이후의 국내 주식시장을 긍정적으로 봤다. 지금이 살 때라는 뜻이다.
노 전무는 "최근까지 국내 기업에 대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사 자율에 맡기다 보니 한계가 있었는데 앞으론 보다 강화된 프로그램으로 실제 주주들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 이사 역시 "대선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든 추가 예산을 확보할 것으로 보이고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수급을 책임질 태세여서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할 경우 어느 때보다 편안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머니쇼에서 중장기 가치투자자의 원칙을 설파하는 박성진 대표도 이들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박 대표는 "주가는 하락하고 배당은 늘리는 와중에 배당수익률이 5%가 넘는 기업들이 상장기업의 10%에 육박할 정도니 투자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밝혔다. 남석관 회장은 또 다른 '동학개미운동'으로 투자자들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할까봐 겁난다는 얘기부터 했다. 그는 "투자 시 종목 선정보다 중요한 건 가격이 쌀 때 매수하는 것"이라며 "수년간 국내 주식시장은 가격 하락을 겪으면서 저PER과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주식들을 대거 양산했는데 그래도 주가가 하락할 때 매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거와 같은 실수 반복 안 돼"…분산·분할 투자
남 회장은 만년 저평가주보다는 현재 흐름이 좋은 '인기 대형주'를 하락 시마다 매수하는 분할 매수 전략을 강조했다. 그의 최선호주는 삼성전자·한화에어로스페이스·HD현대미포 등 세 곳이다. 남 회장은 "삼성전자는 6만원 아래 가격에서 나눠서 매수해야 마음고생을 덜한다"며 "트럼프 불확실성은 국내 주식에도 여전히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런 수출주들은 당분간 하락할 때마다 사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22일 종가 기준 5만5000원이다.
노 전무는 삼성전자보다는 SK하이닉스가 낫다는 의견이다. 그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부진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비중도 낮은 편이어서 올해 실적이 다소 부진할 것"이라며 "이와 달리 SK하이닉스는 HBM 비중이 경쟁사보다 높아 마진이 좋고, 미·중 갈등에 따른 악재도 덜해 1분기 '깜짝 실적'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염 이사 역시 남 회장과 마찬가지로 HD현대미포를 장기 매수 추천 목록에 올려놨다. 2022년 이후에 수주한 고부가가치 선박들이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될 것으로 보여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큰 편이다. 염 이사는 "친환경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선박들의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여 향후 실적도 좋을 것"이라며 "HD현대미포는 LNG 연료를 급유해주는 'LNG 벙커링선' 세계 1위 상장사"라고 설명했다.
박성진 대표는 글로벌 무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여지가 작으면서 세계 1등주를 찾아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빙그레·오리온과 같은 'K음식료주'를 톱픽으로 꼽았다. 박 대표는 이들 주식이 내수주에서 수출주로 변신해가면서 진정한 가치 성장주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빙그레의 경우 2018년 5.9%에서 2024년 12.2%로 수출 비중이 늘어났고 수익성도 개선되고 있다"며 "K푸드에 대한 글로벌 관심 증가와 함께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오리온에 대해선 "국내보다 해외 매출이 더 큰 기업"이라면서 "과거 중국과 베트남에서 고성장을 해오다 최근 몇 년 성장이 다소 주춤했지만 최근 아시아권은 물론 러시아·미국·인도 등으로 시장을 확장하며 고성장 사이클에 올라탔다"고 말했다.
현대차 역시 대부분 악재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상승세에 접어들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 전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대규모 미국 투자를 약속하며 미국발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테슬라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는 사이 현대차의 하이브리드차량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전히 미국 주식 비중이 높아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한지영 위원은 이번 머니쇼에서 '좀 해본 서학개미를 위한 격변기 대응 방안'에 대해 강연한다. 그는 엔비디아·팰런티어·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해 저가 매수 기회가 생겼다고 보는 입장이다. 한 위원은 "인공지능(AI) 시대가 종료된 것이 아닌데 AI 핵심 종목인 엔비디아 주가는 2016년 실적 대비 주가 수준으로 돌아갔다"며 "팰런티어 역시 고평가 부담을 던 데다 방위산업이 유망 업종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아 투자자들이 보유해야 할 종목들"이라고 밝혔다.
이들 고수 모두 배당주 역시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꾸준한 현금흐름을 주기 때문이다. 노 전무는 현대차를 성장주로서 좋게 전망했고, 박 대표는 배당주로서 투자할 만하다고 봤다. 박 대표는 "현대차는 2027년까지 주당 최소 배당금 1만원을 확정 발표했다"며 "현재 주가 수준으로 현대차는 5%대 초반, 현대차 우선주는 7%에 육박하는 배당률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염 이사는 기아를 국내 최고 배당성장주라고 평가했다. 남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가 노후 엘리베이터 교체 수요로 실적이 좋아 배당을 늘려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