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쳐다봐주세요”...안전한 곳엔 손 내민 은행들, 자영업자는 외면
박인혜 기자(inhyeplove@mk.co.kr)
입력 : 2025.04.23 20:22:20
입력 : 2025.04.23 20:22:20

중소·자영업자들의 대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시중은행이 대기업 중심으로 대출을 내주면서 수요와 공급 간 불일치가 심화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사의 건전성 관리를 위한 보통주자본(CET1) 비율 규제가 오히려 ‘돈맥경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23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2일까지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3조4000억원 가까이 늘어난 828조5554억원이었다. 3월의 경우 기업대출이 직전 월 대비 2조4938억원 줄었던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연초, 그중에서도 2분기가 기업대출 성수기”라면서 “1분기에 CET1 비율 관리 때문에 기업대출을 좀처럼 늘리지 못했는데, 2분기에는 상황이 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4월 들어 기업대출이 증가했지만 대기업에만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달 증가한 기업대출 약 3조4000억원 가운데 88%에 해당하는 2조9553억원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은 3908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기업대출 잔액에서 중기·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대기업의 4배가 넘는다. 지난 22일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64조9725억원이었고, 중기·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663조5829억원이었다. 중기·자영업자의 자금 수요가 더 많음에도 실제 대출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은행들을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2분기 은행의 대출 수요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더 크게 증가했다. 이에 비해 금융기관이 대출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를 보여주는 대출 태도에서는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에 대해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이 대기업에만 집중하는 것은 CET1 비율 관리 영향이 크다. CET1 비율은 자본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지난해 밸류업의 일환으로 주요 금융지주는 CET1 비율이 13%를 넘어서면 주주환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후 13%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CET1 비율은 은행에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충격 없이 흡수가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척도다. 보통주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산출한다. 연체율이 높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은 동일한 금액의 대기업 대출에 비해 위험가중자산을 더 키운다. CET1 비율 관리에 목을 매는 은행 입장에서는 중기·자영업자 대출에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다.
2분기 들어 기업대출이 늘어난 것도 1분기에 CET1 비율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작년 말 4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을 살펴보면 KB금융 13.51%, 신한금융 13.03%, 하나금융 13.13%, 우리금융 12.13%였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이 비율은 일제히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증권은 올해 1분기 말을 기준으로 KB금융은 13.66%, 신한은 13.10%, 하나는 13.15%, 우리는 12.30%로 높아질 것으로 봤다.
다만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이라 CET1 비율은 언제든 다시 출렁거릴 수 있다. 4월 들어 확대되는 기업대출을 다시 조이면 중기·자영업자들의 자금 확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권에서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CET1 비율 등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기·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면 결과적으로 금융사들의 부담이 커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CET1 비율이라는 것은 자본건전성을 판단하는 척도이지만, 여기에만 매몰되다 보면 은행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택을 담보로 잡아서 내어 주는 1차원적인 이자 장사만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잉여자본이 많다는 뜻인데, 이를 축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를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도 금융권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13%라는 기준을 경제 상황 등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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