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산불 한달] ② 다시 영농활동 나섰지만…"제대로 될지 걱정"

사과·송이·고추 등 지역대표 농산물, 산불피해로 정상생육 '불투명'농기계, 모종까지 타 버려 속수무책…"농기계 빌려 농사짓겠다" 의지
김용민

입력 : 2025.04.21 06:02:03
[※ 편집자 주 = 지난달 22일 의성을 시작으로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경북 북부 5개 시·군을 초토화한 '경북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째를 맞았습니다.

이번 산불은 실화로 시작됐지만 피해 규모는 역대 최악을 기록했습니다.

산불 진화 헬기 조종사 1명을 포함, 모두 27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고 잿더미가 된 산림 면적도 9만9천289ha로 잠정 집계됐습니다.

연합뉴스는 산불 발생 한 달을 맞아 잿더미 속 이재민들의 아픔과 그 가운데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 노력하는 모습 등을 담은 기획 기사 3편을 송고합니다.]

불에 탄 사과나무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송·영양=연합뉴스) 김용민 기자 = 경북 청송군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60대 농민 김모씨.

그는 사과꽃이 피기 시작한 요즘 과수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30여 그루에 달하는 사과나무에 거름을 주고 방제 작업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꽃이 핀 뒤부터는 인공수정 등 본격적인 사과 재배가 시작되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 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러나 모든 나무에 꽃이 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경북 산불 당시 과수원까지 불이 번지면서 일부 나무가 고열과 연기 피해를 봤다.

이 때문에 김씨는 올해 사과 농사가 어떻게 될지 몰라 막막한 심정이다.

김씨는 "과수원 전체가 불에 탄 사람들에 비하면 사정이 좀 낫긴 하지만 피해목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으니 마음이 힘들다"며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과 주산지인 청송에서 산불 피해를 본 재배지는 300㏊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나무가 불에 타거나 그을린 과수원은 올해뿐 아니라 향후 최소 수 년간은 사실상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불탄 고추모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송읍에 있는 한 송이 산도 이번 산불로 소나무 숲 수㏊가 피해를 보면서 송이를 더 이상 수확하지 못할 처지다.

매년 약 1t 안팎의 질 좋은 송이가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하루 아침에 폐허로 변했다.

송이 채취 농민인 이모씨는 "소나무는 일부가 타든 전부가 타든 송이가 자랄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버린다"며 "숲을 새로 가꿔 송이 생산을 재개하려면 수십 년은 걸릴 텐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고추 주산지인 인근 영양군 석보면에 사는 농민 박모씨는 모종이 불에 타버렸지만 요즘 들어 고추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달 말 모종밭에 산불이 번지면서 애써 가꾼 모종이 재가 됐다.

재산 피해는 약 100만원 정도지만 모종을 새로 구하려면 300만원이나 필요하다.

어려운 형편에 부담이 크지만 고추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기에 고추밭 갈이를 시작했다.

영양군에서 산불이 비켜 간 다른 지역 고추 농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종을 기부해 주기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석보면에는 박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고추 농사꾼이 20여명에 이른다.

평균적인 규모인 3천㎡가량의 고추밭에서 나오는 소득은 연 2천만원 남짓이다.

도시 근로자 평균 소득을 고려하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지만, 농촌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박씨는 "모종이 없어 올해 고추 농사를 접어야 하나 싶었는데, 뜻있는 분들이 기부한다고 해서 마을을 고쳐먹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낳은 경북 산불로 북부지역 농민들이 농사를 재개할 수 있을지 기로에 놓인 가운데 지자체들도 모든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

청송군과 영양군은 피해 복구를 위한 긴급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농업생산기반시설 복구 등에 나섰다.

농기계 임대 사업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북도 또한 이 지자체들과 함께 농기계 임대, 농자재 보급 등 임박한 영농철을 앞두고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농기계만 하더라도 피해 규모에 비해 지원액이 턱없이 모자라 실효성이 있을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청송군의 경우 건조기, 관리기, 경운기 등 산불 피해를 본 농기계만 1천900대로 추산된다.

수백만원짜리도 많지만 1대에 수 천만원 하는 값비싼 농기계도 적지 않다.

이에 반해 청송군이 산불 이후 농기계 보조 사업을 위해 확보한 예산은 자체 5억원, 경북도 예산 2억원 등 7억원에 불과하다.

청송군 관계자는 "산불 피해 조사가 마무리되면 농기계 지원 관련 예산을 어떻게 쓸지 정할 계획"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예산을 더 확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어렵사리 영농을 재개하려는 이재민들은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찾아 필요한 장비를 빌려 쓰고 있다.

청송지역의 경우 청송읍 등 3곳에 있는 임대사업소는 요즘 밀려드는 이재민들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영농철을 맞아 곧 논에 모를 심고 밭에 씨를 뿌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논밭을 빨리 갈아놔야 해서 트랙터나 관리기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너도나도 농기계를 빌리겠다고 나서면서 한정된 수량으로는 감당이 안 돼 농민 한 사람당 이틀 정도밖에 빌려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농기계 임대소 관계자는 "집이 불에 타 대피소에서 살면서도 농사는 지어야 한다며 농기계를 빌리려는 주민이 많다"며 "안타까우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그들의 의지에 감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yongmi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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