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상승·미분양 증가 등 겹악재…'7월 위기설' 현실화하나

침체 장기화 속 연초부터 중견 건설사도 줄줄이 법정관리행DSR 규제 확대 앞두고 업계 긴장…철강·시멘트까지 파급효과
권혜진

입력 : 2025.06.01 06:05:02


서울시내 한 건설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건설업계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쁘다는 한국은행의 전망은 침체의 늪에 빠진 채 좀처럼 반등 기미를 찾지 못하는 건설업 현황을 극명히 보여준다.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 속에 악성 미분양 주택 수는 늘고, 인허가·준공·착공 등 선행 지표는 나란히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겹악재가 수년간 지속되면서 올해는 연초부터 중견 건설사의 법정관리행이 잇따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관세 인상에 내달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등까지 예정돼 업계에선 조만간 건설사의 줄도산이 일어날 수 있다는 '7월 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다.

공사가 진행 주인 한 건설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공사비 상승에 악성 미분양 증가…겹악재에 불황 심화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건설투자 성장률은 -6.1%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13.2% 이후 최저 수준이다.

한은 전망치가 아니더라도 이미 각종 건설 관련 통계 지표는 건설업 불황이 갈수록 심화하는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1일 통계청의 1분기 산업활동동향 등에 따르면 공사 실적을 보여주는 건설기성(불변)은 27조12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0.7% 감소했다.

IMF 직후인 1998년 3분기(24.2%)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건설기성은 작년 2분기 3.1% 줄어든 이후 3분기와 4분기에 9.1%와 9.7%씩 감소했다.

경기 부진 속에 주택을 다 지어놓고도 팔지 못한 '악성 미분양'도 계속 불어나며 지난 4월에는 2만6천422가구에 달했다.

전월보다 5.2% 증가한 것은 물론 2013년 8월 이후 11년8개월만에 최대치다.

악성 미분양은 건설사의 재무 부담과 직결돼 있어 업계가 추이를 주시하는 수치다.

또한 가장 최근인 지난 4월의 주택 3대 지표(인허가, 착공, 준공)가 일제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업황 전망도 어둡다.

4월 주택 인허가는 2만4천26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2.6% 줄었다.

주택 착공은 2만5천44가구로, 전월 대비 81.8% 증가했으나 1~4월 누계(5만9천65가구)로는 작년 동기 대비 33.8% 줄었다.

건설업 불황은 공사비 상승과 수도권과 지방 간 부동산 시장 양극화가 주원인이라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원자잿값이 뛰었고, 고물가 기조로 인건비도 오르면서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로 이어졌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4월 건설공사비 지수는 131.06포인트로, 2020년(100 기준) 대비 30% 이상 올랐다.

이어 더해 지방 부동산시장 침체와 고금리 기조가 미분양으로 이어지며 지방 건설업체에 큰 타격을 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감소 등도 침체를 앞당겼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이 어렵다는 말은 늘 있지만 최근 몇 년은 정말 어렵다"면서 "부동산 시장뿐만 아니라 건설업계도 양극화가 나타나며 지방에서 주로 분양하는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자재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줄폐업에 중견 건설사 잇달아 법정관리행…'7월 위기설' 확산 건설업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올해 건설업계에선 경영난에 따른 법정관리 신청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지난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 평가에서 111위를 차지한 광주지역 건설업체 영무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로써 올해 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건설사는 11곳으로 늘었다.

지난 1월 주택브랜드 '파밀리에'로 널리 알려진 신동아건설(시공능력평가 58위)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을 시작으로, 2월 삼부토건(71위)과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4월에는 대흥건설(96위) 등이 각각 법정관리 절차를 밟았다.

모두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이내 건설사여서 업계에선 상당한 충격으로 여겨졌다.

이 외에 대저건설(103위), 삼정기업(114위).

이화공영(134위), 안강건설(138위), 벽산엔지니어링(180위) 등도 올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모두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미분양 증가 등으로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 공통된 해석이다.

자금난으로 인한 건설사들의 법정관리행이 계속되자 업계에선 '7월 위기설' 우려가 나오며 긴장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내달 DSR 3단계 시행 등으로 부동산 시장에 관망세가 확산하면 미분양 등이 더 늘어나며 유동성 위기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건설산업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종합건설업 말소·폐업은 221개로, 전년 동기 대비 47개 증가했다.

종합건설사와 전문건설사를 합친 1분기 말소·폐업은 747개에 이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의 실적도 부진한 상황인데 지방에서 주로 영업하는 중소규모 건설사는 어떻겠느냐"면서 "'어느 건설사가 어렵다', '어느 건설사가 문 닫는다더라'라는 소문이 계속 돈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수요 감소에 철강 공장 가동 중단도…후방산업도 타격 건설업 부진은 철강과 시멘트 등 후방산업에도 타격을 줄 뿐만아니라 건설 인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동국제강은 7월22일부터 인천공장 압연공장과 제강공장 생산을 한 달여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인천공장은 회사 전체 매출의 40%를 담당하는 핵심 거점이자 연간 국내 철근 생산량 1천300만톤(t) 가운데 220만t을 담당하는 곳이다.

건설경기 악화로 인한 수요 침체 장기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철강과 함께 건설업 주요 원자재인 시멘트 수요도 5분의 1가량 줄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시멘트 출하량은 812만t으로 작년 동기 대비 21.8% 감소했다.

1분기 출하량이 1천만t을 밑돈 것은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뿐이다.

건설업 불황으로 취업시장도 얼어붙었다.

올해 4월 건설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5만명 줄어들며 작년 5월부터 12개월째 전월 대비 감소세를 지속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건설업의 불황이 장기화하면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건설사 수익성을 뒷받침해줄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lucid@yna.co.kr(끝)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6.02 18:12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