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바꾸자] ② 기금화 찬반 팽팽…미국·일본·영국 해외사례 보니

정계·학계 "수익률 증대 물꼬 트고 수수료 인하 등 서비스 개선 효과" 기대금투업계 "日·英 기금·계약형 수익률 비슷…美 401k 직접비교 불가" 반박
김태균

입력 : 2025.05.25 07:00:09


퇴직연금(PG)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퇴직연금 기금화의 타당성과 관련해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무엇보다 기금화 도입이 연평균 2%대에 불과한 퇴직연금의 현재 운용 수익률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을지 견해가 크게 갈린다.

현행 계약형에서 기금형 전환시 퇴직연금의 운용 수수료가 낮아지고 서비스 품질이 나아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시장 혼란 등 부작용이 더 많을 것이란 우려도 작지 않다.

◇ "국민연금 같은 규모의 경제 필요" vs "전혀 다른 운동장" 정계와 학계 등 기금화 찬성 진영에서 가장 많이 제시하는 찬성의 근거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돈을 한데 모아 전문가가 일괄 운용하는 기금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연평균 수익률이 8%대에 달한다.

퇴직연금은 개인 가입자가 제각각 운용 방향을 지시하는 계약형인 탓에 자금이 분산돼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어려운 만큼, 국민연금과 같은 기금형으로 전환하면 수익률 개선 효과가 클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런 주장이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의 차이를 간과한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퇴직연금은 운용환경이 전혀 달라 국민연금의 성공 공식을 바로 대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일정 연령이 될 때까지는 연금 수령이 아예 불가능하고, 적립금에 대한 법적 규제가 따로 없어 국민연금공단(NPS)의 운용 재량권이 넓다.

반면 퇴직연금은 반대로 주택구매 등 사유에 따라 중도 인출이 가능하고, 적립금에 대한 운용 규제가 복잡하다.

이렇게 운용환경이 다른 만큼 퇴직연금을 기금화하면 바로 국민연금처럼 높은 수익률을 올릴 것이란 가정은 무리가 있다고 금투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 국내 유일 기금형 퇴직연금 '푸른씨앗' 성공 모델? 현재 국내 유일의 기금형 퇴직연금은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이 있다.

푸른씨앗은 연평균 6%대의 양호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기금화 찬성 진영에서는 푸른씨앗의 가입 범위를 대거 넓히고 국민연금공단 등의 대형 기금 사업자를 참여시키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 수 있게 되고, 산업별 퇴직연금 기금까지 가세하면 수익률 개선의 승산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또 기금형 퇴직연금이 차별적 디폴트 옵션을 제시해 가입자 인식을 바꾸면 계약형 퇴직연금 사업자도 이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어, 수익률 제고 노력 면에서 '선의의 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이들은 본다.

그러나 현행 퇴직연금 시장의 규모는 420조원이 넘는 만큼 소규모인 푸른씨앗을 기금형의 효용성을 확신할 근거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 금투업계는 의문을 제기한다.

푸른씨앗은 30인 이하 중소기업만 대상으로 해 적립금이 올해 2월 말 기준 1조원 수준이다.

금투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은 원리금이 보장되는 예금 상품이 기본 운용 방안(디폴트 옵션)에 포함되어 있고, 다수 가입자의 보수적 성향이 여기에 반응한 결과"라며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기금화만 서두르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일본·영국·미국 등 해외사례 두고도 해석 분분 기금화 찬성 진영에서는 기금형 퇴직연금인 '401k'가 크게 성공한 미국 사례를 많이 거론한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9~2023년 5년 동안 401k의 평균 수익률은 9.7%에 달한다.

하지만 금투업계는 애초 퇴직연금을 기금 형태로만 도입해 계약형이 20년 동안 자리 잡은 미국과 한국은 출발점부터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한 미국 퇴직연금이 높은 수익률을 내는 이유는 기금형 구조보다는 디폴트 옵션을 미리 장기 분산투자로 설정한 영향이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한다.

계약형과 기금형 퇴직연금이 병존하는 주요 선진국으로는 일본과 영국이 있다.

금투협 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에서 2014∼2023년 10년 동안 평균 퇴직연금 수익률은 계약형 3.8%, 기금형 3.6%를 기록했다.

영국에서는 최근 5년간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이 계약형 7.5∼10.7%, 기금형 5.1∼8.3%로 조사됐다.

금투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계약형과 기금형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서비스 개선 위해 충격요법 시급" vs "연못에 고래가 뛰어드는 격" 기금형 퇴직연금이 서비스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기금화 찬성 측은 고객의 돈을 저 수익률 상태로 방치한 현 퇴직연금 체제가 서비스 면에서 문제가 컸던 만큼, 기금형 사업자와의 각축을 통해 변화를 강제화하는 '충격 요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자동화와 협상력 강화 등을 통해 수수료를 대폭 줄이고 계약형 사업자를 긴장시켜 서비스 혁신을 유도하는 효과가 클 것이란 주장이다.

이에 반해 금투업계는 기금형 모델이 수탁 법인을 세워야 하는 등 관여 주체가 늘어나 오히려 비용이 더 올라갈 공산도 있다고 맞서고 있다.

또한 한국은 이미 세계 주요국과 비교해 퇴직연금 수수료가 싼 편이라 이를 더 인하할 여지가 적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한국의 퇴직연금 수수료는 작년 기준 0.31%로 호주의 기금형 퇴직연금인 '슈퍼에뉴이에이션'(Superannuation)의 수수료(0.36%)보다 낮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신사옥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제공]

한편 국민연금공단 같은 거대 공공사업자가 진입하면 퇴직연금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연금공단은 작년 기준 1천212조원의 국민연금을 굴리는 데다, 이 돈을 여러 금융사에 위탁 운용시키기 때문에 금투업계에서 갖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이런 사업자가 퇴직연금 시장에 진입할 경우 '공공 대 민간' 경쟁이 과열되고 자칫 많은 민간 업체가 저수익 퇴직연금 사업을 포기하고 이탈할 수 있다고 금투업계에선 우려한다.

비유하자면 고래가 연못에 뛰어들면서 그 무게에 물이 넘치며 다른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다 떠내려가, 생태계가 오히려 황폐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금화 찬성론 측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의 진입을 일부 제한하거나 민간 금융회사의 기금 사업 참여를 널리 보장해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ta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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