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해외여행 계획과 함께 여행 플랫폼 주식을 사 모으는 김 모씨(37). 최근 사상 최고가를 찍은 글로벌 여행 플랫폼 부킹홀딩스 주식을 일부 팔고 국내 여행 업체 하나투어를 샀다. 하나투어가 지난 5월 8일 실적이 급감했다는 공시를 내놓으면서 주가가 하락하자 저점 매수 기회로 삼은 것. 김씨는 "중장기 투자자에게 단기 실적 악재는 저가 매수 기회"라며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7% 이상 하락해 기분 좋게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식 포트폴리오엔 부킹홀딩스를 비롯해 익스피디아, 에어비앤비 등 국내외 여행 관련주로 꽉 차 있다.
그는 "유럽 여행은 부킹홀딩스로, 미국으로 갈 땐 익스피디아를 이용하다가 두 주식 모두 사게 됐다"며 "현지에서 차량으로 이동할 땐 '우버'를 타니 이 주식도 살 것 같다. 차라리 모든 여행 주식을 담고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AWAY(Amplify Travel Tech)를 매수할까도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
미·중 관세전쟁 리스크가 줄어들고, 유가와 환율까지 안정되면서 김씨처럼 여행 관련 주식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원화값 상승은 여행비용을 줄여주고, 유가 하락은 항공료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에 여행 수요가 늘어나고 이들 기업 실적이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관세전쟁으로 냉각된 국제 관계가 회복되면 각국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이후 계엄과 탄핵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선거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치가 안정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여행 수요도 늘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호재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관세전쟁은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어 다시 타오를 수도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각종 이슈가 정리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 불확실성은 다시 커질 수도 있다. 호재가 악재로 돌변할 가능성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여행주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nline Travel Agency·OTA) 1위 부킹홀딩스는 다른 미국 주식이 고전하는 와중에도 5월 들어 주가가 사상 최고가로 날아올랐다. 부킹홀딩스는 인공지능(AI) 기술력을 활용해 여행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다양한 호텔을 콕 짚어주는 데 일가견이 있다. 여행객은 'AI 알고리즘'에 따라 호텔을 저렴하게 예약했다고 믿어 행복하고, 회사는 적정 마진을 챙겨 실적이 좋다.
특히 부킹홀딩스는 미국보다 가격대가 비싼 유럽 호텔 네트워크를 장악해 경쟁사 대비 마진율이 높다. 월스트리트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도발→미국 내·미국향 여행 수요 감소→풍선효과로 유럽 여행 증가→유럽 노출도 높은 부킹홀딩스 실적 증가'로 이 주식의 높은 주가를 정당화한다.
OTA 점유율 2등 익스피디아 역시 주가가 최고가에 근접하고 있다. 최근 익스피디아는 경영 효율화를 통해 마진을 높이고 있어 월가가 이 상장사 목표주가를 올리고 있다. AI 서비스도 강화해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부킹홀딩스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투어는 올 1분기에 '역기저효과'라는 후폭풍을 겪고 있다. 역기저효과는 과거에 너무 좋은 기록을 세워 현시점의 실적이 부진해 보인다는 뜻이다. 작년 1분기가 워낙 좋았고 올 1분기는 비수기에 정치적 불안정도 겹쳤다는 것. 5%대 배당수익률에 더 주목하라는 의견이다. 여행주에 대한 투자 리스크는 여행객의 OTA 의존도 감소와 OTA 업계 내 경쟁 심화 등 크게 두 가지다. 여행객들이 OTA를 거치지 않고 호텔이나 항공사와 직접 예약해 더 싸게 여행을 다녔다는 후기가 나오면서 OTA 의존도가 떨어지고 있다. 공유 주택 플랫폼 에어비앤비는 기존 OTA 1·2등의 점유율을 갉아먹고 있다. 자연스레 부킹홀딩스 주가의 고평가 문제도 나오고 있다. 특정 종목 투자 리스크를 줄이려면 전 세계 여행 관련주를 모두 품은 AWAY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테마별 ETF를 만드는 데 소질이 있는 미국 독립운용사 앰플리파이가 2020년 출시했다. 부킹홀딩스·익스피디아·하나투어 등 33개 종목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올해 항공 여행 사상 최대···부킹홀딩스 최고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항공 여객 수는 52억명으로 추정된다. 작년보다 6.7% 증가한 수치다. 연간 여행객 50억명 돌파부터가 사상 최고치다. 여행객들은 2020년 코로나 사태를 5년 만에 완전히 극복하며 전 세계를 누빌 태세다. 월가는 이러한 여행 수요 폭발의 '열매'를 OTA 투톱인 부킹홀딩스와 익스피디아가 따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공신력 있는 글로벌 OTA 점유율 통계는 2020년(슈타티스타 기준)이다. 부킹홀딩스가 36%의 점유율로 1위다. 그 뒤로 익스피디아(28%), 에어비앤비(18%), 트립닷컴(15%) 등이 따른다. 익스피디아는 시장 점유율 2위이긴 하나 실상은 OTA의 시초다.
익스피디아는 1996년 미국 빅테크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항공권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에서 시작됐다. 객실 예약에 손대면서 덩치가 커졌고, 1999년 MS에서 분사했다. 이후 2003년 호텔스닷컴, 2004년 트립어드바이저, 2013년 트리바고 등을 인수하며 거대 여행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익스피디아보다 1년 늦게 '프라이스라인'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부킹홀딩스. 당시 프라이스라인은 여행 비수기에 호텔 객실이 텅텅 비어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일부 여객기도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 항공사와 호텔 체인들은 비어 있는 좌석이나 방을 헐값에라도 넘기려 한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여행객에게 이를 넘겨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프라이스라인의 이러한 방식에 월가는 환호했고, 1999년 나스닥에 상장한다.
프라이스라인은 2005년 부킹닷컴과 2007년 아고다를 잇달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다. 2018년에는 유럽 사업에서 경쟁력이 있어 그룹 내 최대 매출을 기록한 부킹닷컴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부킹홀딩스로 사명을 바꾼다. 작년에는 국내 K팝 인기를 등에 업고 관련 패키지여행 상품을 만들어 국내에 많은 외국인이 유입되는 데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올 1분기는 전 세계 여행 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관세전쟁과 강달러 등의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OTA 업체들은 전 세계 통화로 벌어들인 수익을 달러로 환산하는데 이때 달러가 강할 땐 환산 수익이 감소하게 된다. 부킹홀딩스의 1분기 매출은 47억6200만달러로, 작년 1분기보다 7.9% 증가했다. 그러나 조정 주당순이익(EPS)은 19.82달러로, 1년 전보다 12.7% 감소했다. 익스피디아는 사정이 더 안 좋았다. 미국에 편중된 사업구조 탓에 같은 기간 익스피디아는 순이익 기준 4150만달러의 적자를 봤다. 올해 들어 주가 역시 부킹홀딩스는 오르고 익스피디아는 하락세다. 여기엔 지역별 비중이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부킹홀딩스의 2024년 전체 매출에서 미국 비중은 10.5%다. 나머지 89.5%가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 나왔다. 이와 달리 익스피디아는 미국 의존도가 61.2%에 달한다. 인접 국가인 캐나다 국민이 미국 여행을 끊을 정도로 갑자기 미국이 여행 '비인기국'이 됐다. 관세 도발로 주변국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월가 관계자는 "캐나다발 미국 여행 예약이 30%나 감소하면서 익스피디아를 통한 미국 입국 전체 여행 수요가 7% 줄었다"고 지적했다. 실적 발표 당시 익스피디아 경영진은 "미국 내 항공과 호텔 예약 수요도 예상보다 부진했다"며 미국인의 국내 여행 수요 감소도 원인이라고 밝혔다.
미국 숙박 업계는 힐튼·메리어트·하얏트·IHG 등 4대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다. 이와 달리 유럽은 중소형 체인이 많아 OTA 입장에선 이들을 설득해 온라인 예약 네트워크로 끌어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월가 관계자는 "부킹홀딩스는 유럽의 소규모 부티크호텔까지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것이 경제적 해자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두 OTA 업체는 2분기부터 살아날 전망이다. 여행 성수기에 달러 기세도 약해지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킹홀딩스의 2분기 매출은 65억294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4%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EPS 역시 같은 기간 17%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익스피디아의 경우 같은 기간 매출은 4%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EPS가 51.7%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적인 사업 구조조정 덕분이다. 익스피디아는 개인 고객보다 기업 고객용(B2B) 사업을 확대해 마진을 높일 계획이다. 익스피디아는 2024년 기준 순이익률이 9.1%다. 부킹홀딩스는 24.3%에 달한다.
월가는 올해 살아날 여행 수요와 AI를 접목한 OTA 업체의 진화에 따라 여행 관련주를 매수하라는 입장이다. 부킹홀딩스에 대해 월가 투자은행 39곳의 목표주가 평균은 5535.56달러다. 19일(현지시간) 주가 기준으로 약 3%의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 배당수익률은 0.71%다. 작년 1분기부터 배당을 시작했다. 익스피디아는 배당률이 약 1%다. 향후 12개월 동안 벌어들일 순익 기준으로 따진 주가수익비율(PER)에선 익스피디아가 11.48배(야후파이낸스 기준)로 부킹홀딩스(25.19배)보다 저평가돼 있다. 현 주가에서 월가의 목표주가까지 남아 있는 상승 여력은 13.4%다. 저스틴 포스트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는 "익스피디아는 2025년 최고의 유망주"라며 "AI를 활용한 고객 응대 서비스를 내놓는 등 운영비 절감이 효과를 보면서 실적 개선 여지가 다른 여행 관련주보다 더 크다"고 전했다.
이익의 절반 돌려준다···하나투어 배당률 5.5%
국내 여행 시장은 격변기에 있다. 야놀자와 네이버, 여기어때 등의 OTA 업체가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 전통(레거시) 여행사 1위 하나투어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설프게 현실에 안주했다가는 국내 OTA 업체들이 헐값에 하나투어를 삼킬 수 있는 환경이다. 야놀자 등 국내 OTA 업체들은 아직 비상장사다.
하나투어의 강점인 패키지여행은 여행사가 일정을 짜주는 상품이다. 그러나 OTA를 활용한 자유여행이 대세가 되면서 하나투어의 최근 실적이 부진하다. 게다가 탄핵 정국으로 국내 단체여행 수요도 급감해 고전 중이다. 올 1분기 매출은 1년 새 8.1%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3.2% 급감했다. 그나마 중국 여행이 늘어나 버티며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임수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비자 면제로 중국 쪽 여행 성장이 유효한 가운데 여름 휴가철 돌입으로 하반기 실적 회복세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대선 이후 억눌렸던 단체여행 수요가 국내외로 폭발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하나투어 경영진과 투자자들은 분기 100억원대 이익을 지켜내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2022년 연간 적자가 1012억원에 달했다. 2023~2024년 연속 흑자였고, 올해는 하반기 실적 개선으로 633억원의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하나투어의 주인은 토종 사모펀드(PEF) IMM 프라이빗에쿼티(PE)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하나투어 대주주로 올라섰다가 2024년 하나투어 실적이 정상화된 이후 보유 지분(16.68%)을 매각하려고 했다. 최근에는 제값을 받기 위해 중장기 주주환원 대책을 내놓으며 주가 방어에 힘쓰고 있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하나투어의 배당 매력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올해 연간 주당 2700원의 배당이 예상돼 배당률이 5.5%까지 올랐다. 작년 말(4.7%)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서 이 수치가 상승한 것이다. 올해를 포함해 향후 3년간 누적 순익은 2475억원이다. 이 중 1238억원(50%)을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이들 여행 관련주에 분산 투자하기 좋은 ETF가 있다. 글로벌 분산 투자자에겐 AWAY가 제격이다. 차량공유 업체 우버, 부킹홀딩스, 중국 넘버원 OTA 트립닷컴,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 등이 3~4%대 비중으로 투자돼 있다. 하나투어 역시 3.09%의 비중으로 담고 있다. 국내 절세계좌로 투자할 수 있는 TIGER 여행레저 ETF에선 하나투어 비중이 8.89%에 달한다. ETF체크에 따르면 비중 1위는 호텔신라(11.21%)다. 이외에도 강원랜드, 대한항공, 파라다이스, 아시아나항공 등 16곳의 국내 여행 관련주에 투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