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그리는 저널리즘의 미래…"여전히 기자가 중심"

폴란드서 세계 뉴스 미디어 총회…AI 시대 언론사 역할 모색 AI 도입으로 업무 효율성 향상… 언론사 수익 모델 위협하기도
현혜란

입력 : 2025.05.11 08:27:30
(크라쿠프=연합뉴스) 권영전 현혜란 기자 = AI가 보도를 할 수 있을까?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수집해 다른 형태로 바꾸는 정도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 오는 추운 날, 취재원의 말 한마디를 듣겠다며 그의 집 앞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리는 일은 할 수 없다.

AI가 저널리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생성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AI가 기자의 일을 빼앗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언론계 종사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AI 요약 서비스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기사 원문을 읽지 않으면 트래픽이 감소해 결국 언론사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위기의식에 맞서 세계 뉴스 발행사 협회(WAN-IFRA)가 지난 4∼6일(현지시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개최한 제76회 세계 뉴스 미디어 총회에서는 'AI는 업무를 돕는 도구일 뿐 기자를 대체할 수 없으니, 두려워 말고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메시지가 거듭 강조됐다.

AI가 수천개의 답변을 쏟아낼 수 있을지언정, 애초에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은 기자의 몫이고 AI가 쏟아내는 답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기자의 역할이라는 게 '미디어의 새로운 전략 마스터하기'라는 제목 아래 열린 총회를 관통하는 주요한 인식이었다.

세계 뉴스 미디어 총회에서 개막 연설하는 WAN-IFRA 회장
(크라쿠프 EPA=연합뉴스) 라디아 하임가르트너 세계뉴스발행사협회(WAN-IFRA) 회장이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개막한 제76회 세계 뉴스 미디어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2025.5.9 photo@yna.co.kr

◇ 언론사 AI 도입 속도…효율성·생산성 향상에 집중 'AI 로드맵'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선 에즈라 이만 네덜란드 공영방송(NPO) 전략·혁신 담당 이사는 "AI를 통해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닌, 지식이 생성되고, 접근되고, 배포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WAN-IFRA가 최근 회원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49%가 이제 막 AI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답한 반면 AI를 아직 사용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8%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이만 이사는 "AI가 이제는 명실공히 '메인 무대'로 이동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언론사가 AI를 활용하는 분야는 주로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초안 쓰기·제목 추천 등 기사 작성과, 방대한 데이터 분석, 기사 요약·SNS 게시 등 업무 흐름 자동화, 텍스트↔오디오·비디오 변환과 같은 콘텐츠 다양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AI 덕에 스위스의 타메디아는 뉴스레터 제작 시간을 80% 단축했고, 노르웨이의 쉬브스테드 미디어 그룹은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4만 시간 절약에 성공했다.

데일리미러 등을 보유한 영국의 리치는 속보 뉴스 게시 시간을 9분에서 90초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업무 효율성·생산성 제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성한 콘텐츠를 세련되게 편집하거나, 콘텐츠 도달 범위를 확산하거나, 주요 기사를 다양한 형식으로 배포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언론사도 있어, 뉴스룸의 AI 도입이 제2의 국면을 맞이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기조연설 하는 네덜란드 공영방송 전략·혁신 담당 이사
(크라쿠프=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네덜란드 공영방송(NPO) 에즈라 이만 전략·혁신 담당 이사가 지난 6일(현지시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제76회 세계 뉴스 미디어 총회에서 AI 로드맵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2025.5.9 runran@yna.co.kr

◇ AI 플랫폼과 경쟁 심화…신뢰도 여전히 문제 하지만 AI가 언론사에 희망만 안긴 것은 아니었다.

기술 플랫폼과의 경쟁 심화로 수익 모델에 위협도 함께 가져왔다.

사용자의 질문에 답변을 제공하는 AI 기반 '답변 엔진'이 기사 등을 참고해 요약문 형태로 답을 제공하면서, 언론사 웹사이트로의 유입이 감소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구글 검색 결과에서 트래픽을 받지 못하는 '구글 제로' 현상은 광고와 구독에 기반해온 언론사의 기존 수익 모델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AI가 구독료 결제 장벽을 우회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언론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AI 모델 학습에 언론사 허락 없이 기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각국 대형 언론사를 중심으로 AI 기업과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지만, 이것이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회색 영역에 남아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줄리아 앵윈은 "우리는 AI 훈련 모델에 데이터를 공급하는 노동자가 됐지만,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AI가 일으키는 환각보다 우리가 우리의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플랫폼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AI의 신뢰도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AI 이니셔티브 팀을 이끄는 잭 수워드는 보도에 LLM을 적극 활용하지만 "절대 LLM을 신뢰하지 말라"는 원칙 아래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기사로 쓰기 전에 반드시 원자료와 비교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계를 확장하다: 뉴스룸에 AI 접목하기"
(크라쿠프=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의 AI 총괄 및 수석 에디터 파비안 헤켄베르거가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지난 5일 열린 제76회 세계 뉴스미디어 총회에서 자사의 AI 혁신 과정을 설명하는 자료.2025.5.9 comma@yna.co.kr

◇ AI와 공존하는 저널리즘의 미래는…혁신·원칙 확립이 관건 이처럼 희망과 두려움이 혼재한 AI 시대에 언론사가 해야 하는 일은 우선 뉴스룸 전반에 AI 역량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AI가 결코 수행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본질에 충실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연사들은 입을 모았다.

뉴스룸 AI 도입을 위해서는 인간이 언제나 그 중심에 있어야 하며, 사내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게 선구적으로 AI를 뉴스룸에 통합한 언론사들의 조언이었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AI 뉴스룸으로 전환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기자가 관여하도록 했다.

LLM 플랫폼에서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의견을 취합하는 상향식 변화를 추진함으로써 신뢰 확보에도 힘썼다.

총회에서는 AI 시대 언론의 경쟁력은 얼마나 혁신하느냐 못지않게 저널리즘 본연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달려있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진실을 파헤치고, 복잡한 사건에 맥락을 부여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은 AI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이노베이션 미디어 컨설팅 그룹의 선임 컨설턴트 루치오 메스키타는 "기자는 이야기 속에 중요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더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고 명시적인 사실뿐만 아니라 암묵적인 의미까지도 이해하고 깊이 파고들 수 있다"며 "이것이 바로 AI와의 차이점"이라고 짚었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린 제76회 세계 뉴스 미디어 총회
(크라쿠프 EPA=연합뉴스) 세계뉴스발행사협회(WAN-IFRA)가 지난 4∼6일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개최한 제76회 세계 뉴스 미디어 총회에 설치된 포토월.2025.5.9 photo@yna.co.kr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comma@yna.co.kr, runra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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