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3배 비싸고 과태료 3천만원 … 폐업 내몰린 자영업자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입력 : 2025.05.05 17:48:03 I 수정 : 2025.05.05 20:41:33
장애인차별금지법 내년 전면시행
바닥 50㎡땐 배리어프리 의무
지원 해준다지만 가격 비싸고
기존 제품 위약금도 부담해야
정부도 명확한 지침없어 혼란
테이블 오더도 '배리어프리'로
정작 개발기준 없어 상품 전무
장애인단체마저 "적용 완화를"
복지부 "상반기중 개선안 준비"




◆ 과잉 입법의 역설 ◆



서울에서 포차를 운영하는 50대 김 모씨는 최근 매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키오스크를 '배리어프리(장애인용) 제품'으로 교체하기 위해 알아보다 혼란에 빠졌다. 김씨는 "어떤 제품을 구매해야 할지 몰라 알아봤더니 보건복지부는 장애인단체에, 장애인단체는 중소벤처기업부에 전화를 돌리더라"며 "제도에 맞춰 기기를 설치하려고 해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23년 1월 처음 시행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법은 3년째 적용 대상을 늘리며 내년 1월 28일부터는 전면 의무화된다.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바닥면적 50㎡ 이상 사업자가 키오스크를 들여놓을 때는 배리어프리 기능을 탑재한 기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설치하지 않은 것 자체로 처벌받진 않지만, 불편함을 겪은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다. 기존에 일반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던 사업자들도 기기를 교체해야 한다.

자영업자들은 키오스크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선 기존 기기 대비 가격이 비싸다. 현재 중기부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인증을 받은 기기 가격은 크기에 따라 340만원, 600만원, 700만원이다. 기존 키오스크가 200만원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3배까지 더 비싸다. 중기부는 기기 가격의 70%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은 그야말로 생색내기 수준이다. 정부는 올해 2000~5000대 지원을 목표로 325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신규·교체 수요가 많게는 수만 건에 달하는데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2023년 3월 국내 한 병원에서 휠체어에 탄 한 장애인 고객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게다가 자영업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정부 인증을 받은 제품이 지금까지 LG전자, 비버웍스, 한국전자금융 등 4곳에 불과하다. 이들이 1년에 공급할 수 있는 장애인용 키오스크는 2000~500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영업자들로선 교체하려야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기기 설치 비용뿐만 아니라 기존 기기 해약에 따른 위약금, 바닥재 설치 비용 등 부대 비용도 들어간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은 키오스크를 쓸 때 대리점을 통해 포스기와 결합상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키오스크만 변경하기 위해 결합상품을 해지하는 데 따른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행령은 키오스크 주변으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고, 바닥재도 따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15평 남짓한 매장에 테이블 6개를 두고 있는 한 자영업자는 키오스크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테이블 하나를 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테이블마다 설치하는 '테이블오더' 기기도 배리어프리 기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테이블오더용으로는 어떤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아 시장에 출시된 제품이 전무하다.

정부에 따르면 국내에 보급된 키오스크는 2023년 현재 53만6602대다. 키오스크는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도입됐지만 되레 비용만 늘리면서 키오스크를 아예 없애는 업체도 늘어날 분위기다. 직원도 키오스크도 없는 업주 '나홀로' 매장만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법령 개정과 시행에만 몰두한 탁상행정이 수많은 외식업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미 기기를 설치한 자영업자에게는 정부 보조금과 대상을 현실성 있게 대폭 확대하고, 소규모 외식업 사업장은 설치 의무를 면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단체들마저 유연한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도입이 필요하다"면서도 "적용 기준을 완화해줘야 설치 의무가 있는 사람들의 정책적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상반기 중에 제도를 완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

장애인,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의 편의를 고려해 높이 조절, 음성 안내, 안면 인식, 수어 영상 안내, 점자 키패드 등이 내장된 무인정보단말기를 가리킨다. 2026년 1월 27일까지 바닥면적 50㎡(약 15평) 이상 사업장은 일반 키오스크를 설치했더라도 배리어프리로 바꿔야 한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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