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더 많이 태우고, 쉽게 안 꺼진다"…산불 대형화·장기화 "수종 문제로만 볼수 없어" "야간 진화대책 마련하고 산림청 강화해야"
김선형
입력 : 2025.03.30 07:05:02
[※ 편집자 주 = 경북 동북부 5개 시·군을 초토화시킨 '경북 산불'이 축구장 6만3천245개, 여의도 156개 면적을 잿더미로 만든 뒤 149시간만에 꺼졌습니다.
성묘객 실화로 시작된 이번 산불은 역대 최고인 시간당 8.2㎞ 속도로 이동하며 26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불길은 사그라들었지만 기후변화 등 영향으로 갈수록 대형화, 상시화하는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 대응체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연합뉴스는 산림당국의 산불 대응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책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기획기사 5편을 송고합니다.]
'산불 재난' (의성=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2025.3.25 psik@yna.co.kr
(의성=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불만 붙었다 하면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대형 산불이 일상이 되고 있다.
과거 몇시간이면 끌 수 있던 산불은 이제 수일, 길게는 일주일 넘도록 일대를 휩쓸며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가 키워낸 화마는 더 이상 봄철 계절적 재난이 아닌 일상 속 연중 재난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동해안에 자주 발생했던 대형 산불은 최근 몇 년 새 내륙 산악 지형까지 넘보며 대형화·장기화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산불 대응 체계의 근본적 대전환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끝없이 폐허로 변한 산림, 한없이 번져가는 산불 (의성=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산불이 휩쓸고 간 의성군 산림이 폐허가 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산불이 안동시 쪽으로 번져나가고 있다.지난 22일 발생한 의성 산불의 산불영향규모는 현재까지 1만2천565㏊로, 2000년 4월 강원 강릉·동해·삼척·고성 산불(2만3천913ha), 2022년 3월 경북 울진·강원 강릉·동해·삼척 산불(2만523ha)에 이어 국내 산불 피해 규모로는 세 번째로 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2025.3.25 psik@yna.co.kr
◇ 빽빽한 조림 '늙은 산림'…화약고로 변신 이틀간 '경북 산불' 현장을 둘러본 강원대 산림환경보호학과 채희문 교수는 연합뉴스에 "이번 산불을 키운 원인을 침엽수·활엽수와 같은 수종 문제로 국한할 건 아니다"라고 30일 밝혔다.
그는 "물론 경북 산림 40% 이상이 불에 취약한 소나무로 형성된 침엽수림"이라면서도 "이번에는 침엽수림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이 빽빽이 조밀하게 붙어있었다"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숲 자체가 불에 취약한 구조로 되어있다"라며 "이번 산불로 침엽수림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산불에 강하다는 활엽수도 많이 탔다"고 이어갔다.
그는 "현장에 가보면 덩굴 식물도 건조한 상태며 조밀하다"라며 "활엽수 낙엽도 많이 쌓여 있어 산불이 대형화·장기화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단순히 침엽수림으로 구성된 조림(造林) 환경 때문에 주불 진화까지 오랜 시간이소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채 교수는 "숲을 볼 때 개별 나무에 한정 지을 게 아니라 전체를 보며 관리해야 한다"라며 "나무 사이 간격을 넓혀 불에 강한 숲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한마디로 우리나라 숲은 너무 밀집돼 있고 고사목이 많다"라며 "불에 취약한 산림 구조를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 산림은 1970∼80년대 대대적으로 조성된 침엽수 위주 고령 산림이 다수다.
산불 확산 속도가 훨씬 빨라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수지(樹脂: 나무가 분비하는 점도 높은 액체) 성분이 많고 고사목이 많은 침엽수림은 불이 쉽게 붙고 빠르게 번진다.
국립산림과학원 역시 "장기화하는 산불에 대응하려면 산림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게 출발점이고 정기적인 숲 가꾸기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산불에서 지켜낸 마늘밭 (의성=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28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한 마늘밭 인근 비탈이 산불에 검게 탄 가운데 농민들이 일을 하고 있다.2025.3.28 psik@yna.co.kr
◇ 산불, 항시 위험하다…더 이상 봄철 한시적 재난 아냐 최근 산불은 피해 면적이 증가하는 대형화 양상을 보인다.
통계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 연평균 건수 자체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산불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건 통상 '기후적 요인'과 산불의 땔감이 되는 나무, 즉 '연료적 요건'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불 대형화·장기화 현상은 우연이 아닌 기후·산림 등 복합 요인이 얽힌 결과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따뜻한 겨울, 봄철 고온 현상에 강수량은 줄어들고 있다.
고온·건조한 기후는 산림을 빠르게 말려 불쏘시개로 만든다.
높은 일교차는 돌풍과 강풍을 만들어 내 작은 불씨도 순식간에 대형 산불로 번지게 한다.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1.5도 이상 높았고, 강수량은 40% 가까이 감소했다.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 산불이 유발된 배경이 됐다.
오늘날 산림당국은 산불 대응을 주로 봄·가을철 '산불조심기간'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산불은 시기와 관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한 번 발생하면 장기간 진화가 어렵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불이 한 해 특정 시기에만 발생한다는 인식은 이제 과거의 일"이라며 "고온·건조한 날씨가 일상화된 만큼 365일 대응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길 (의성=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2025.3.25 psik@yna.co.kr
◇ 한계에 부딪힌 진화 시스템…"결국은 예산 문제·장비 확충 시급" 대형 산불의 또 다른 특징은 낮에 진화하지 못한 불씨가 밤에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존 장비로는 야간 산불에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험악한 산악 지형은 인력 접근을 막아 진화를 지연시키고, 다시 피해를 키우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도 야간 진화가 사실상 불가능해 최장기간 불태우던 중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서야 주불 진화가 선언됐다.
채 교수는 "결국은 예산 문제"라며 "우리 국토 63%를 담당하는 게 산림청인데 조직이 작으니 조직이 제어할 수 있는 한계에 맞닥뜨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산림청은 환경부보다 더 큰 조직이 되어 산불, 산사태, 재선충 등 산림재난재해에 대비해야 한다"라며 "지금 산림청은 재난재해만 대응하기에도 벅차게 작은 조직"이라고 말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환경연구부장은 "야간 비행을 할 수 있는 진화용 드론과 열화상 장비, 초대형 헬기 등 고도화된 장비 도입이 필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