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세율 15%’에 미국과 도장 찍었다…한미협상 결과에 숨죽인 차업계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우제윤 기자(jywoo@mk.co.kr), 정지성 기자(jsjs19@mk.co.kr)

입력 : 2025.07.23 22:47:42
美, 일본차 최종 관세 15%로

美시장서 日 추격하던 한국차
가성비 앞세워 격차 줄였지만
최근에는 가격 경쟁력도 흔들

美현지 생산량 日이 앞서는데
관세협상도 밀리면 설상가상
다른 품목들도 줄줄이 직격탄


경기도 평택항에서 수출 기다리는 자동차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일본이 미국과 무역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대미 관세협상 총력전을 전개하는 우리 정부의 부담이 커졌다. 미국 수입 시장에서 우리나라 최대 경쟁국인 일본보다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에서 받아 낸 15%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율 인하 등은 한미 무역협상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22일(현지시간) 타결된 미·일 관세 협상으로 일본의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졌다. 이는 미국이 지금까지 합의한 교역국 가운데 영국(10%)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품목별 관세 인하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미국으로부터 자동차 관세를 15%(기본 관세 2.5% 포함)로 낮추는 결정을 이끌어 낸 점도 성과로 평가된다.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도 커졌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오는 8월 1일부터 우리나라 주요 수출 품목엔 일본보다 10%포인트 높은 상호관세가 부과된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일본은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인하를 얻어 내면서 반대급부로 예상보다 과감한 카드들을 내준 것으로 평가된다”며 “우리와 무역환경이 비슷한 국가에서 무역 합의가 나왔기 떄문에 우리 협상팀 입장에서는 협상 전략을 수립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통상 전문가들이 미·일 관세협상 결과에 주목하는 것은 일본이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최대 경쟁국이기 때문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수입 시장에서 우리나라와 수출경합도가 높은 국가는 일본, 독일, 멕시코, 캐나다 등이었다. 일본의 수출경합도가 0.52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이어 독일(0.41), 멕시코(0.36), 캐나다(0.29) 순이었다. 수출경합도가 1에 가까울수록 양국 간 수출 구조가 유사하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미국 수입 시장의 자동차 품목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대미 총수출에서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일본이 35.3%, 한국이 33.8%에 달했다. 미국 자동차 수입 시장 점유율 역시 일본 13.0%, 한국 11.5%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자동차 업계는 이번 미·일 상호관세 타결로 긴장한 분위기다. 지금까지는 영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품목 관세 25%를 적용받아 동등한 조건이었지만, 일본 자동차 관세가 15%로 낮아지고 한국산 자동차 관세가 25%로 유지되면 한국 차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 회사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도요타그룹 자동차의 신차 평균 거래 가격은 4만4955달러(약 6200만원), 현대차그룹은 3만7497달러(약 5170만원)로 조사됐다. 도요타그룹 자동차 가격이 평균적으로 20% 더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중론이다. 고가 픽업트럭을 제외하면 두 브랜드 간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자동차업체 도요타 로고 [EPA = 연합뉴스]


실제로 도요타의 타코마, 툰드라 등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차종이자 고가 차량인 픽업트럭은 인기리에 팔리고 있지만 현대차의 상황은 다르다. 현대차도 싼타크루즈라는 픽업트럭이 있으나 크기나 가격 면에서 볼 때 이런 차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까지 10%포인트 차이로 차별적으로 부과되면 현대차그룹의 가격 경쟁력은 사실상 사라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지화 부분 역시 약점이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완성차 회사는 미국 현지 생산 비율이 60% 이상이라 40%대인 현대차그룹보다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관세에서까지 불리해지면 경쟁이 더 어려워진다.

미국과 일본이 최근 관세협상을 타결했지만, 철강에 대한 50% 고율 관세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국내 철강 업계에서도 관세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한풀 꺾인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일본 정부는 자동차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25%에서 12.5%(기존 관세 포함 시 15%)로 낮추면서도 철강에 부과되는 50% 관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국내 업계는 과거 ‘무관세 쿼터제’ 부활 또는 최소한 철강 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미 협상에서 바로미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 일본 철강에 대한 관세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업계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일본보다 높은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일본과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줄여왔던 다른 수출 품목에서도 악재가 예상된다. 무역협회가 2016년 대비 지난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기계류의 경우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6.9%포인트에서 2.4%포인트로 줄였다. 전기·전자 제품 점유율 격차는 4.5%포인트에서 0.1%포인트로 줄었고, 화학공업 제품과 의료·정밀·광학기기 등에서도 2%포인트 이상 시장 점유율 차이를 좁혔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통상연구원장은 “일본과의 수출 경합을 고려하면 관세율에 대해서는 적어도 일본보다는 불리하면 안 된다는 기준에서 한미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과 같이 자동차 품목별 관세 인하를 받아 내고, 철강 관세 인하까지도 있느냐가 협상의 주안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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