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사구의 재발견] ② '핫플' 제주 월정해변, 개발 광풍에 사구 70% 파괴

땅값 수십 배 치솟아 최근 7년간 277채 신·증축 해수부 "사구 훼손, 모래 공급 끊겨 해수욕장 배후지도 위험"
고성식

입력 : 2025.06.15 08:00:07 I 수정 : 2025.06.15 08:10:52
[※ 편집자주 = 해안사구는 바닷가와 그 주변 육상에 있는 모래 언덕 등 모래땅입니다.

해안사구는 해수욕장 백사장에 모래를 공급하는 모래 저장고이며, 거센 파도의 충격을 흡수하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기후 위기를 막아 줄 '블루카본'의 저장고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 열풍 속에 제주를 비롯한 국내 많은 사구가 옛 모습과 기능을 잃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제주의 해안사구를 중심으로 그간 크게 쓰임이 없는 모래땅으로만 여겨진 해안사구의 가치를 소개하고, 보전 방안을 찾아보는 기사를 10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2025년 6월 제주 월정해변
[촬영 고성식]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전날 밤까지 북적이던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제주시 구좌읍 월정해수욕장.

지난 3일 이른 아침 해변을 산책하던 한 주민은 "월정리에는 과거 꽤 넓은 모살(모래) 땅이 있었다"며 "해변 일대가 모두 모살이었고 마을은 지금보다 훨씬 안쪽에 자리 잡아 모래바람을 피했다"고 말했다.

'달이 머무른다'는 이름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월정(月停)리의 해수욕장과 그 일대 해변 모래땅을 마을 사람들은 '한모살'이라고 부른다.

한모살은 '모래가 많다'는 의미의 제주어로, 주민들은 한모살이 이름 그대로 꽤 넓은 모래땅이었다고 전한다.

1967년 제주 월정 백사장
[해양수산부 연안포털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월정리에는 월정해수욕장 백사장(해빈) 뒤쪽부터 남동쪽 마을까지 수㎞에 이르는 띠 모양의 해안사구가 있었다.

현재도 마을 곳곳에 파편처럼 남은 모래땅이 과거엔 규모가 있는 사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해양수산부 연안포털의 1967년 월정해수욕장 항공 사진은 이 같은 주민의 기억을 뒷받침해 준다.

사진에서 보라색 선부터 바다 쪽은 백사장이고 보라색 선 뒤는 사구 지역이다.

바다에서부터 백사장-해안사구와 마을·농경지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모습이 확인된다.

사진 아래쪽 농경지 지대 사이(붉은색 원)에는 사구와 백사장으로 자연적으로 모래가 흐르는 흔적이 관찰되기도 한다.

당시는 해안도로가 들어서지 않았다.

2021년 월정 백사장
[해양수산부 연안포털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의 해안도로는 1990년대 해안사구와 일부 백사장을 아스팔트로 덮어 조성됐다.

2021년 월정해수욕장 사진에서는 과거 백사장이던 곳(파란색 부분)과 사구 지역에 건물과 주차장 등이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안도로가 해안사구 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도로가 모래 길목에 있고 도로 턱을 넘지 못한 모래가 도로 주변에 계속 쌓이는 현상이 반복돼 주민과 차량의 불편이 반복된다.

월정해수욕장 백사장은 1967년과 비교해 54년 뒤인 2021년에 4천21㎡ 가 잠식됐다.

환경단체는 특히 2010년 이후 월정리가 관광지로 주목받으면서 급속한 관광개발이 진행돼 월정사구와 백사장 면적 감소세가 가속한 것으로 추정한다.



모래 위에 개설한 월정 해안도로가 2004년 폭우 피해로 무너진 모습
[연합뉴스 자료 사진]

◇ 조용한 마을이 관광 '핫플'로…개발 붐 월정해수욕장이 있는 월정리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카페 한두곳이 있는 조용한 농어촌 마을이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월정해수욕장의 아담하고 아름다운 해변이 입소문 나면서 관광객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적했던 해변이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자 모래땅을 매립해 카페 등 상가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문제는 해안도로 자체가 사구와 백사장 일부에 들어섰고 그 해안도로를 따라 해변 코앞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면서 해안사구가 크게 훼손됐다는 점이다.

해안사구의 모래는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백사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 백사장의 모래를 채우게 된다.

'모래 저장고'인 해안사구가 훼손되면 백사장 등 전체 해변도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게 된다.



2018년 여름 월정해변
[연합뉴스 자료 사진]



월정리 찾은 외국인 관광객
2024년 9월 제주시 구좌읍 월정해수욕장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풍광을 즐기고 있다.2024.9.20 [연합뉴스 자료사진] jihopark@yna.co.kr

주민 800명 안팎의 작은 마을인 월정에서만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년간 숙박시설, 가정집, 상가·업무시설, 문화·집회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의 건물 총 277채가 신축 또는 증축됐다.

연도별로 2013년에는 10건 이하였지만 2018년에 61건으로 대폭 증가하더니 2019년 53건, 2020년 27건, 2021년 37건, 2022년 51건, 2023년 24건, 2024년 24건 등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카페·음식점·숙박 등의 상가 시설이 2011년까지 15곳에서 2014년에는 42곳으로 늘었고 2016년 64곳, 2017년 73곳, 2023년 98곳으로 급증했다.

개발 광풍에 제주도 이외 지역 사업자들이 몰려들면서 땅값도 들썩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월정리 해안 인근 한 필지의 공시지가는 2010년 3.3㎡당 6만2천700원에서 2022년 426만300원으로 약 67배나 뛰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월정 해변의 상인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심각하다.



[그래픽] 제주 월정리 신축·증축 건물 현황
(서울=연합뉴스) 원형민 기자 =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주민 800명 안팎의 작은 마을인 월정에서는 관광객들이 늘며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년간 숙박시설, 가정집, 상가·업무시설, 문화·집회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의 건물 총 277채가 신축 또는 증축됐다.circlemin@yna.co.kr 페이스북 tuney.kr/LeYN1 X(트위터) @yonhap_graphics

◇ 개발로 위협받는 월정리의 보석 월정리에 불어닥친 개발 광풍은 하얀 모래사장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특히 사구가 훼손돼 월정리의 보석인 에메랄드빛 해변마저 위협하고 있다.

월정해수욕장 백사장 면적은 2003년 대비 2019년에 263㎡ 감소했고 백사장 폭은 0.7m 줄어들었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151㎡가 줄었고 폭은 0.4m 좁아졌다.

월정사구는 2016년 백사장을 포함해 최대길이 470m, 최대 폭 330m, 면적 약 5만㎡에 달하는 비교적 큰 규모였지만, 2020년에는 백사장을 포함한 최대 폭이 60m로 감소해 면적이 약 1만5천㎡로 축소됐다.

불과 4년 사이 월정사구 등의 면적 70%가 사라진 것이다.

해수부의 '2024년 연안 침식 실태조사'에서 해수욕장 배후지 피해 위험성 정도가 100점 만점에 만점인 100점으로 매우 높아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부는 이 같은 피해 원인으로 파도 등에 의한 모래 유실도 있지만 해안사구 훼손으로 모래 공급이 끊기면서 백사장이 침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월정사구가 훼손되자 바람과 파도에 유실된 월정해수욕장 백사장 모래가 자연적으로 다시 채워지지 않고 있다.

파도와 바람에 의한 모래 유실이 지속되면서 장기적으로는 해수욕장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게다가 뜨거웠던 월정 관광 붐도 코로나19 이후 관광객들이 감소하면서 점차 식고 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차 줄면서 해변 주변에는 텅 빈 채 '임대'라는 안내가 붙은 상가 건물이 여럿 보인다.

제주 월정 해변 부근의 상가임대 현수막
[촬영 고성식]

월정리의 연도별 신규 카페·음식점 신규 영업 신고 건은 2018년 36건, 2019년 25건, 2020년 18건, 2021년 29건, 2022년 26건, 2023년 11건, 2024년 19건, 올해 5월까지 7건 등이다.

하지만 폐업 건수가 2022년 11건, 2023년 8건, 2024년 20건, 올해 5월까지 8건 등으로 작년부터 폐업 건수가 신규 영업 건수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

바닷바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천연 모래 언덕인 사구는 개발의 광풍에 의해 단기간에 급속히 사라졌고 이제 관광 열풍도 차츰 식으면서 빈 건물만 남고 있다.

이런 월정리 현실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주민 A씨는 "월정 해안 쪽 상가 주인 중에는 월정리 사람이 없다.

모두 외지인이다"라며 "돈은 외지인들이 벌어들이지만, 주민들은 관광객들로 인해 시끄러운 소리를 견뎌야 하고 마을 내 교통도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객이 줄어들어 마을 경제가 안 좋아질까 봐 걱정되기는 하지만 마을 환경을 잘 가꾸면 관광객들은 언제인가는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주민 B씨는 "작은 농촌 마을에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던 와중에 마을이 주목받고 땅값도 올라 좋은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나타냈다.

B씨는 "월정리에 혐오시설인 동부하수처리시설 증설이 허가되자 앞으로 관광객이 줄 것으로 예상해 상인들이 떠나는 것"이라며 "백사장이 줄거나 자연이 훼손된 점은 없다.

더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윤희 제주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국장은 "월정해수욕장 주변은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에 대한 검토할 틈도 없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많은 개발이 이뤄지는 등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며 "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해안사구를 보호하는 정책을 펼쳐서 전체 해변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텅 빈 제주 월정 상가 모습
[촬영 고성식]

(이 기사는 제주환경공익기금위원회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koss@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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