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쌀값 폭등 부른 일본 농정 실패

경수현

입력 : 2025.06.14 07:07:00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레이와(令和·현 일왕 연호)의 쌀 소동'으로 불리는 일본의 쌀값 폭등 현상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가장 최근 조사한 결과를 봐도 평균 쌀 소매가는 여전히 1년 전의 2배 수준이다.

농림수산성이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국 슈퍼 1천 곳을 상대로 조사한 쌀 5㎏ 평균가는 4천223엔(약 4만원)으로 전주보다 0.9% 내렸다.

정부 비축미 덕인지 2주 연속 하락했다.

그러나 이는 1년 전 가격인 2천136엔(약 2만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2배 수준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3월 10일부터 비축미를 풀기 위한 입찰을 시작했지만 효과는 광범위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 비축미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일본에서 쌀값 상승이 사회적 관심을 끌면서 초기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쌀 소비, 작년 8월 '난카이 해구 지진 임시 정보(거대 지진 주의)' 발령에 따른 일시적 쌀 사재기, 중간 유통업자 농간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이제는 2023년 가을 작황이 나쁜 편이어서 재고 물량이 줄어든 데다 일본 내 쌀 생산이 구조적으로 부족해졌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그리고 '겐탄'(減反)으로 상징되는 일본 정부의 오랜 미곡 정책이 원흉으로 지적된다.

겐탄은 벼 대신 다른 작물로 전작을 유도하는 등의 방식으로 쌀의 잉여 생산을 억제하고 쌀값이 과도하게 폭락하지 않게 하는 정책이다.

1971년 도입된 이 정책은 공식적으로는 2018년 폐지됐지만 휴경이나 전작 보조금 지급에 따른 쌀 생산 조정 등 기본적인 농정 기조는 지속됐다.

적정 쌀값을 유지해야 쌀 농업이 지속될 수 있고 자급률도 지킬 수 있다는 이유 등에서였다.

그러나 이번 레이와의 쌀 소동으로 그동안의 농정 기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라면 구경하기도 힘들던 수입쌀을 '1인당 한포대'라는 판매량 제한 안내문과 함께 마트에서 종종 마주치고 도시민들은 비싸진 가격에 부담을 느껴 구입을 망설이는 상황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쌀값 고공행진의 악영향이 얼마나 큰 문제였는지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싸게 공급된 정부 비축미가 처음 매장에 풀린 지난달 말 극적으로 드러났다.

현지 언론들은 이날 '반값 쌀'로 불리는 정부 비축미를 매장에 내놓은 대형 슈퍼체인 이토요카도 도쿄 오모리점이나 미야기현 센다이시 아이리스그룹 매장 등의 모습을 자세히 전했다.

개점 2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는 50대 여성은 1포대를 받아든 뒤 "쌀값이 비싸져서 잡곡을 많이 섞어 밥을 짓거나 밥 대신 파스타 등을 먹는 날을 늘렸다"면서 기뻐했다.

30대 회사원 남성은 "그동안 밥을 먹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였다"며 "오랜만에 2천엔대로 쌀을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고 또다른 30대 여성은 "이제야 익숙했던 가격에 쌀을 살 수 있게 됐다"며 구입한 쌀 포대를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어 가족들과 공유했다.

일본 대형 슈퍼 체인에 깔린 미국 칼로스 쌀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미국산 쌀을 대표하는 칼로스 쌀이 지난 8일 일본의 대형 슈퍼 체인 이온 매장에 진열돼있는 모습.2025.6.8.evan@yna.co.kr

일본 정부도 농정 기조의 본격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쌀 생산 억제 정책을 폐기하고 증산으로 방향을 트는 쪽이다.

쌀 증산으로 가격이 내려갈 경우에 대비해 농가 소득을 보전하는 제도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은 이달 2일 참의원(상원)에 출석해 "쌀 정책을 2027년 이후에 크게 전환할 것"이라며 쌀 생산량 조정 정책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지난달 21일 쌀 정책 방향을 증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야당 의원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성은 5년마다 개정하는 '식료·농업·농촌 기본계획'에 최근 쌀 수출을 늘리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쌀 잉여 생산 능력을 활용해 수출을 확대하다가 수급난이 발생하면 수출분을 국내에 공급해 가격 폭등을 막겠다는 것이다.

쌀 생산 억제 정책에 따라 일본의 쌀 재배면적은 지난 50년간 40%가량 줄었고 쌀 생산량은 그 이상 감소했다고 최근 한 강연에서 농정 전문가인 야마시타 가즈히토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CIGS) 연구원은 지적했다.

남의 일로만 들리지 않는 지적이다.

한국의 농정도 구체적인 방식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장기간 쌀 생산을 억제하면서 비슷한 기조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실제 2024년 한국의 논 면적(농림축산식품부 통계)은 1975년보다 40%가량 줄어든 상태다.

이상기후도 빈발하는 시대를 맞아 이웃 나라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모내기
(순창=연합뉴스) 염기남 전북 순창군 부군수가 8일 풍산면 도치마을의 박동민(44) 씨 논에서 올해 군내 첫 모내기를 돕고 있다.2025.4.8 [순창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kan@yna.co.kr

eva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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