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구원투수' 삼성전자 전영현 취임 1년…내실 다지기 집중

이례적 '반성문' 제출…토론 문화 부활·조직 문화 재건 강조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 주력…HBM 공급 확대·파운드리 개선 등 과제
장하나

입력 : 2025.05.18 06:41:01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이 위기에 빠진 삼성 반도체 사업의 '구원투수'로 전격 투입된 지 오는 21일로 1년이 된다.

반도체 사업 재건이라는 중책을 맡고 7년 만에 복귀한 전 부회장은 취임 후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내놓은 데 이어 조직 문화 개선 등 '기본기 회복'을 통한 위기 극복에 주력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R&D단지 NRD-K 설비 반입식에서 기념사 하는 전영현 부회장
[삼성전자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18일 업계에 따르면 전 부회장은 지난 1년간 자기반성과 반도체 토론 문화 부활 등에 방점을 찍고 근원적 기술 경쟁력 확보를 통한 내실 있는 변화를 꾀하는 데 집중해 왔다.

작년 5월 21일 '원포인트' 인사를 통해 DS부문장에 임명된 전 부회장은 2017년까지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한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다.

삼성 반도체 사업이 전방위적인 위기에 처한 가운데 귀환한 '올드보이' 전 부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삼성 반도체의 현주소와 경쟁력 하락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데 몰두했다.

취임 5개월 만인 작년 10월에는 3분기 잠정실적 발표 후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며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내놨다.

반성문에는 근원적 기술 경쟁력의 복원, 수성(守城) 마인드가 아닌 도전 정신, 조직문화 재건 등에 대한 의지가 담겼다.

앞서 전 부회장은 실적이 크게 개선된 작년 2분기 실적 발표 당시에도 구성원에게 "2분기 실적 개선은 근본적인 경쟁력 회복보다는 시황이 좋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며 근원적 경쟁력 회복을 강조한 바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 하락이 부서간 소통의 벽(사일로 현상), 관료화된 조직의 느린 의사결정, 과도한 보고 문화 등으로 특유의 토론 문화가 약화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 전 부회장은 토론 문화 부활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신(新)조직문화'(C.O.R.E.

워크) 조성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치열한 토론 문화는 삼성의 반도체 성공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문제를 발견하면 실무자들 간 활발한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고 이는 기술적 도전을 가능하게 하고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삼는 데 기여했는데 이 부분이 최근 들어 약화했다고 본 것"이라고 전했다.

작년 11월에는 총 5번에 걸쳐 DS부문 전 임원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어 경쟁력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 실행 중심의 리더십 ▲ 조직간 협력 ▲ '디테일 경영'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생산 라인
[삼성전자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이를 토대로 삼성전자 반도체의 근간인 메모리 사업은 그간 흔들린 위상을 바로잡고, 수조원대의 적자를 내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기초를 먼저 다져 나간다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전 부회장은 D램 설계팀과 개발실을 이끌던 자타공인 반도체 설계 전문가로, 전 부회장의 복귀 당시 일각에서는 삼성 내부적으로 반도체 설계 분야의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작년 말 인사에서 설계 전문가를 다수 승진시키며 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에 나섰다.

전 부회장에게는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직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팀을 신설, 고객 수요에 맞춰 빠르게 램프업(생산량 확대)하고 있다.

전 부회장은 고객 니즈(요구)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HBM 큰손 고객인 엔비디아 경영진과도 수시로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 출장 등을 통해 빅테크들과 적극 소통하며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력 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삼성 HBM3E에 남긴 사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만 아직 경쟁사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HBM 공급 확대와 파운드리 수익성 개선 등 남은 과제도 여전히 산적해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 34%에 그치며, HBM 시장 주도권을 쥔 SK하이닉스(36%)에 처음으로 1위를 내줬다.

HBM 판매 감소 여파 등으로 1분기 메모리 매출은 19조1천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7%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아직 엔비디아 공급망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못한 상태다.

전 부회장은 앞서 3월 주주총회에서도 "빠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HBM 5세대인) HBM3E 12단 제품이 시장에서 분명히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HBM4, 커스텀(맞춤형) HBM 등 신시장에 대해서는 작년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차질없이 계획대로 개발하고 양산할 것"이라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HBM 5세대인 HBM3E 개선제품의 샘플을 공급한 데 이어 6세대 HBM4 개발과 공급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와의 반도체 매출 격차는 이미 10조원 이상 벌어진 상태다.

이에 삼성전자는 올해 양산이 시작될 2나노 공정을 필두로 전반적인 공정 완성도를 높여 고객 확보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은 하나의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투자, 연구개발, 양산까지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1년 만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처럼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인재 확보, 내부 문화 혁신 등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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