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 불확실성속 '회색코뿔소' 美 재정적자에 경고장

"재정적자, 미국 경제 최대 리스크" 월가 거물들 한목소리 우려'깜짝 강등' 두곤 "터무니없는 결정" vs "미국채 가격 떨어질 것"
이지헌

입력 : 2025.05.17 10:17:15


뉴욕 무디스 본사 건물의 무디스 로고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6일(현지시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강등한 것은 미국의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문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일종의 '경보' 발령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무디스가 등급 강등 배경으로 지목한 미 연방정부의 재정지출 문제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며 월가의 영향력 있는 인사라면 모두가 한목소리로 해결을 촉구해온 대표적인 '회색 코뿔소'(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 이슈다.

무디스의 강등 조치가 시장이 알지 못한 새로운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닌 만큼 일각에선 이번 발표가 가진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며 시장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관세 정책으로 미국의 경제침체 우려가 커지고 시장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번 강등 조치가 미 국채 가격의 하락을 촉발하는 등 시장 충격을 유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무디스 "현 논의로는 美재정적자 개선 기대 못 해" 일갈 무디스는 이날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그 배경으로 Aaa 등급을 가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미국의 정부부채 비율, 재정지출에서 이자 지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높다는 점을 들었다.

무디스는 등급 조정 보고서에서 "역대 미 행정부와 의회는 대규모 연간 재정 적자와 증가하는 이자 비용의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조치에 합의하는 데 실패해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검토되는 재정 개편안으로는 의무적 지출과 재정 적자 규모가 다년간 실질적으로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평가했다.

국채 이자비용을 포함한 의무적 지출이 미 연방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73%였지만, 2035년에는 78%로 높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나아가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시행돼 올해 말 종료를 앞둔 감세법이 연장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로 인해 향후 10년간 매년 재정적자를 4조 달러 추가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Aaa 등급 국가의 경우 세수에서 이자지출 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이 1.6%에 불과한 반면 미국의 경우 이 비중이 지난해 12%를 차지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지속적이고 큰 규모의 재정 적자가 미 연방정부의 부채와 이자 부담을 더욱 가중할 것이란 우려다.

로스앤젤레스항의 미국 국기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 美 재정적자, 알면서도 못 고치는 전형적인 '회색 코뿔소'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가 미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요인이라는 점은 월가의 영향력 있는 인사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지적이다.

위험 요인인줄 알면서도 대처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회색 코뿔소 이슈인 셈이다.

'월가의 구루(스승)'로 꼽히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미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연방정부 재정적자 지속을 꼽으며 미국은 한도가 무제한이고 청구서도 받지 않는 신용카드를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청구서가 언젠가 온다면,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도 미국의 정부 부채 증가세가 지속 불가능해 보인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수준으로 줄이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무디스는 지난해 6.4%였던 이 비중이 2035년에는 9%로 상승할 것으로 봤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최근 연례 주주총회에서 재정적자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재정 적자 축소 이슈를 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회는 그 일을 안 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의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 '재정적자 우려' 버핏도 과거 피치 강등땐 "걱정할 필요 없어" 한편 일각에선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의 심각성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신용 등급 강등에는 "뜬금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의 수석 경제학자를 지낸 조지프 라보르냐는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등급 수정 발표 시기가 "매우 이상하다"고 지적하면서 무디스가 가정한 세수 전망이 너무 비관적 가정 아래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정 매파(재정건전성 강조) 성향 인사들은 더욱 신중한 재정 전망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로 이번 발표를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주도의 대규모 감세 패키지가 이날 미 연방 하원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가운데 신용등급 강등 발표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참모였던 스티븐 무어 헤리티지재단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강등 조치에 대해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이 Aaa가 아니라면 어떤 자산이 그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은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목하며 "무디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잔디는 2016년부터 트럼프를 반대해온 인물"이라며 "그의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비판했다.

다만, 이는 무디스 애널리틱스가 신용평가를 수행한 무디스 레이팅스와는 별개 회사인 점을 고려하지 않은 반응으로 풀이된다.

워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부 월가 거물들은 재정적자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도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 2023년 8월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을 당시 해당 결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AAA(피치의 최고등급) 등급을 받는다는 것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며 "미국은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하는 국가이고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캐나다(신용등급 AAA)를 거론, 미국이 조성한 안정성에 의존하는 국가의 신용등급이 미국보다 높은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버핏 회장도 피치의 등급 강등 이후 인터뷰에서 "세상엔 사람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있다"라며 "이번 일이 바로 그러하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 경기침체·美자산 우려 속 '결정타' 시각도 반면 무디스의 강등 결정 배경을 경청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관세 정책 불확실성으로 시장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이번 강등 조치가 시장에 단기적인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헤지펀드 톨루 캐피털매니지먼트의 스펜서 하키미안 최고경영자(CEO)는 "무디스의 등급 하향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미국의 재정적 무책임의 연장선에 있다"며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공공 부문은 물론 민간 부문에 더 높은 차입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안전자산으로서 미국 국채의 지위마저 의심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 강등 조치가 미국 국채 가격의 추가 하락(채권 수익률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인프라스트럭처 캐피탈 어드바이저스의 제이 햇필드 CEO는 "이번 소식은 시장이 매우 취약해진 시기에 나왔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시장의 반응을 목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평가했다.

pa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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