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부터 우리가 개입" 첫 입장

"통화정책에 큰 영향…실질적인 법적 권한 필요" 2단계 입법 앞두고 기관 간 '샅바 싸움' 관측도
한지훈

입력 : 2025.05.12 06:03:00



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원화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허용될 경우 한국은행이 인가 단계부터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은 측이 주장했다.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2단계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통화당국으로서 규제 권한을 놓치지 않으려는 물밑 포석으로 풀이된다.

12일 한은에 따르면, 고경철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지난 9일 한은 별관에서 열린 한국금융법학회 학술대회에 참석해 '스테이블코인 관련 동향 및 향후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고 팀장은 발표문에서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발행자 진입 규제와 관련해 인가 단계에서 중앙은행에 실질적인 법적 권한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원화와 1대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 법정 통화인 원화 수요를 대체할 가능성이 크고, 한은의 통화정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렸다.

실제 USDT(테더) 등 미국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해외 송금이나 결제 분야에서 달러 대신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현행법상 국내에서 아직 발행 자체가 허용되지 않은 상태다.

고 팀장은 "중앙은행이 인가 단계에 실질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중앙은행 정책 수행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제화 설계부터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디지털 지급결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은이 추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이를 기반으로 한 예금 토큰, 스테이블코인을 모두 아우르는 미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블록체인 전문 기업인 DSRV 랩스의 서병윤 미래금융연구소장은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사흘 걸리던 정산이 몇 초로 줄게 되면 통화 유통 속도도 달라질 것"이라며 "어느 정도 통화당국의 개입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무자급인 고 팀장이 현장에서 본인을 '학술대회 등에 한은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소개한 만큼 참석자들은 그의 발언을 한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였다.

이번 발표는 한은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더 구체화한 내용이기도 했다.

한은은 지난달 지급결제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과 관련, "통화 주권을 침해하고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외부 충격으로 코인 투매가 발생하면 관련 리스크가 전통 금융시장으로 전이되면서 지급결제 시스템의 안전성이 저해될 수 있다"며 "도입 및 규제 방안 마련 시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USDT 등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며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허용할 거냐 말 거냐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이은 가상자산 2단계 입법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허용 여부도 주요 쟁점 중 하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 8일 경제 유튜버들과의 대담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만들어놔야 국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제 권한을 두고 기관 간의 '샅바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같은 당 민병덕 의원은 지난달 24일 공개한 디지털자산기본법 1호 법안 초안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권한을 한은이 아닌 금융위원회가 갖도록 규정했다.

고 팀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금지하자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통화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히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hanjh@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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