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엔 부자 노인만 있나”...실버타운은 많은데 요양시설은 태부족

이호준 기자(lee.hojoon@mk.co.kr)

입력 : 2025.02.23 13:11:58 I 수정 : 2025.02.23 16:36:44
전국 실버타운의 28%가 서울 소재
반면 장기요양기관은 고작 8% 불과

서울 임대료 못 버텨 경기도로 밀려나고
전국 동일한 수가 때문에 경영상 한계


수도권에 위치한 한 실버타운 전경. 기사와는 상관없는 사진. [매경DB]
서울 강북에 위치한 A 실버타운. 수백만원의 비용을 지급해야 거주할 수 있는 이 곳은 고급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 영양사가 관리하는 식단, 찜질방, 사우나를 비롯해 고급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A 실버타운 관계자는 “생활에 여유가 있고 건강한 시니어를 상대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게이트볼이나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있어 입주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같은 서울이어도 강남에 있는 B 장기요양센터는 상황이 다르다. B 기관 대표는 경기도로 센터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 한 달 월세만 2000만원이 넘는 통에 이익이 거의 없는 탓이다. 김 씨는 “서울에 노인이 많아 센터 이용수요가 많고 운영하기 좋은 환경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값비싼 임대료 탓에 유지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시니어 산업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인구가 경기도 다음으로 많은 서울의 특성상 요양이 필요한 노인도 많은데, 정작 이들을 위한 장기요양기관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반면 일상생활에 별다른 지장이 없는 시니어가 비싼 입주비를 내고 거주하는 실버타운은 서울에 집중돼 있어, 시니어 산업의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은 정신이나 건강 문제로 일상생활이 힘들어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사람이 비교적 적은 돈을 지불하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22일 매일경제가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전국 17곳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장기요양기관 자료에 따르면, 작년 기준 서울 장기요양등급 인정자 수는 15만9120명으로 경기도에 이어 전국 2위였지만, 인정자 1000명당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 수는 3곳으로 최하위권인 15위에 머물렀다. 반면 경기도는 인정자 1000명당 8.9곳으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전국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 수는 2020년 5762곳, 2021년 5988곳, 2022년 6150곳, 2023년 6269곳, 작년 6323곳으로 해마다 증가한 반면, 서울은 2020년 512곳에서 지난해 480곳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매년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전체 기관 중 서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8%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의 경우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실버타운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60세 이상 노인이 월 최소 100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는데, 작년 기준 서울에는 11곳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40곳의 실버타운이 등록돼 있는 것을 감안하면, 27.5%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비싼 땅값이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값비싼 임대료 때문에 서울에서 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기 힘들어 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소상공인마당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경기도 중대형 상가 1층 임대료는 1㎡당 2만7010원이었지만, 서울은 1㎡당 5만4760원으로 두 배가 넘었다.

서울에서 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다가 최근 경기도로 이전한 박태진 씨(53)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은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 한 분 한 분 모셔 오고 댁까지 모셔다 드려야 해서, 교통이 편한 서울이 아무래도 유리하다”면서도 “하지만 너무 비싼 월세 때문에 시설 운영이 어려워 교통이 다소 불편해도 임대료가 저렴한 경기도로 이전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장기요양수가가 모든 지역이 동일하다는 점도 탈(脫)서울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수가는 복지부가 정한 장기요양 서비스 가격으로, 서비스 종류와 이용자 등급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일상 활동도 요양보호사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기요양 1등급 인정자의 경우 하루 수가가 7만1940만원이다. 이용자 개인이 15%를 내고, 나머지는 복지부가 부담한다.

장기요양기관은 노인복지법에 따라 면적별로 입소 인원 제한이 있는 데다, 서울이 타 지역과 수가가 같으니 매출에 한계가 있어 서울에서는 운영이 힘들다는 지적이다. 반면 실버타운은 지불해야 되는 비용도 높고 인원 제한도 없어 장기요양기관과 비교할 때 사업자가 큰 수익을 낼 수 있다.

노인요양 전문기업 케어링 관계자는 “건강하고 활동적인 노년층인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산업은 활발한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장기요양기관 운영이 힘들다는 건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양극화”라며 “법정 입소인원 제한이나 비싼 땅값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정부 차원의 수가 현실화나 서울 지역 기관에 대한 특별운영비 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실버타운은 영리 추구가 목적이기 때문에 노인 인구가 많은 서울에 주로 짓게 된다”며 “장기요양기관의 경우 지자체 차원에서 인건비를 보조해 주거나, 장기요양기관 건립을 반대하는 ‘님비’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공공 장기요양기관이 활발하게 지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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