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통상전쟁 트럼프 관심사는 美기업 보호 韓기업, 美생산 확대 능사아냐 반도체 보조금 축소 등 대비를 韓, 중국과 교역 끊을순 없어 통상 리스크별 전략 세울 필요
-변화무쌍한 트럼프의 관세 공세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미국의 공세에 그저 끌려다니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권 전 부회장=미국 관세 공세의 목적과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트럼프에겐 미국 기업 보호가 최우선이다. 그다음이 외국 기업의 미국 내 공장 건설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에 짓는 공장이 미국 기업들과 경쟁하게 되는 건 아닌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예컨대 트럼프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무척 중시한다. GM 같은 미국 대표 자동차 기업 보호가 최우선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자동차 회사가 미국 내에 생산거점을 추가하는 게 과연 트럼프가 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잘 생각하고 보수적인 시각에서 현지 공장 건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반면 미국이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2차전지 분야에선 우리가 적극적으로 현지 투자 협상에 나서면서 (관세 공세)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도록 해야 한다. 무분별한 공장 건설 압박에 굴복하다간 공장을 짓더라도 오히려 미국 측의 지원은커녕 견제만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진 회장=이미 여러 기업들이 미국에 적잖은 투자를 했다. 미국 내에 공장을 지은 우리 반도체 기업 얘길 들어보니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현지 생산인력 역량이 한국에 미치지 못하고, 제조 인프라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또 미국에서 계속 보조금을 주기 힘들 거란 우려도 있다. 단순히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송 대표=미국 현지 공장 건설은 적극적인 사고에서 추진해볼 만하다. 기업이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동인이 있다. 시장이 있거나, 생산원가가 절감되거나. 미국은 전자에 해당한다.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은 기업의 자연스러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뤄지는 부분이 있으며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대미흑자가 현지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중간재와 설비들이 미국 현지로 들어가며 발생한 부분이 큰 만큼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안보·경제 파트너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미·중 통상전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시늉만 하다 타협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송 대표=미·중 간 완전한 공급망 분절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본다. 세계는 여전히 연결된 상태로 남을 것이다.
▷권 전 부회장=미·중 간 치명적인 공급망 분절은 없을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입안될 당시엔 강력한 대중 견제 장치들이 논의됐지만, 실행 단계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만 법안에 담겼다. 극단적인 공급망 분절이 야기하는 리스크를 미·중 모두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 회장=통상전쟁에서 미국이나 중국이 단독으로 승자가 되기는 어렵다. 다만 중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잃고 경제성장이 둔화돼 중국판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을 대체하는 나라로 인도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가 부상할 수도 있다. 우리 입장에선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에 편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권 전 부회장=중국은 이제 시장으로서 매력을 상실했다. 또 기존 저가 생산기지 역할에서 벗어나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로 전환한 게 명확해졌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선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게 매우 중요해졌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 중심으로 전략을 다시 짜고,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게 시급하다.
▷송 대표=한국 입장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을 짜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리한 통상 디커플링(탈동조화) 시도는 공급망을 더 불투명하게 만들고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현 상태를 유지하되 시나리오별 컨틴전시플랜(비상대응방안)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중국이 아세안, 러시아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면서 한국과의 통상 비중이 줄어든 만큼 우리는 대중 통상 규모의 베이스라인을 방어하는 방향의 정책을 고민해볼 수 있다.
-통상전쟁과 더불어 미·중 기술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하다.
▷진 회장=과거 일본보다 훨씬 뒤처졌던 한국 제조업이 여러 부문에서 일본을 추월했는데, 중국은 규모와 기술력에서 훨씬 방대한 수준으로 미국을 따라잡았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10년 후면 전 세계를 호령하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특별 분야에서만 미국이 우위를 점할 것이나 여기에서도 중국을 완전히 견제하긴 힘들 것으로 본다.
▷송 대표=중국은 투자 규모와 기술 혁신에서 모두 미국에 필적하는 성과를 이미 달성했다. 일례로 2023년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64%에 해당하는 3조3000억위안(약 656조원)을 연구개발(R&D)에 지출했는데 이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 규모다. 다만 중국은 첨단 반도체나 혁신적 신약 같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측면에선 여전히 미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경쟁이 있어야 혁신이 촉진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