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존재감 커진 국민연금 과도한 대주주 전횡 막는다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입력 : 2025.01.06 17:53:31 I 수정 : 2025.01.06 20:31:45
국민연금 수책위, 굵직한 의결권 행사 확 늘어
한미약품 갈등·두산 합병 등
투자자로서 적극적인 목소리
국민연금 지분 높은 기업에는
중요 안건 없어도 의결권 행사
수책위의 주총 참여만으로도
상장사들 입장에선 부담 요인
안건 반대의견 1년새 10%P↑




◆ 목소리 커지는 국민연금 ◆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가 작년에 여러 자본시장 현안에 개입했다.

최근 사례는 한미약품의 경영권 분쟁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6~7% 보유했으며, 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열세에 놓였던 작년 초부터 이들에 대한 지지를 이어왔다. 마침내 작년 12월 말 국민연금 지지를 등에 업은 4인 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라데팡스)의 승리로 분쟁이 마무리됐다. 만약 국민연금이 반대편에 섰다면 모녀 측이 조기에 동력을 상실할 터였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합병·분할 안건도 최초 안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수책위마저 반대할 기류가 나오자 두산 측은 수정안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2023년 KT에 이어 2024년에는 포스코에서 수책위 의결을 거쳐 새로운 수장(최고경영자·CEO)이 선임됐다. 이처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주주총회 안건에는 기업 지배구조, 오너 일가의 가족사 등 흥미 위주의 해석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수책위에서 우선시되는 원칙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다.

수책위 관계자는 "이사 선임이나 계열사 분할·합병과 같은 안건들이 주로 관심을 받다 보니 수책위가 기업 지배구조라는 조금 더 거창한 주제를 논하는 곳이란 인식이 있다"면서 "연금 수익률을 해친다면 아무리 좋은 지배구조 개편안도 수책위 논의에서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이 투자, 주주활동 등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반영하는 것도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장기 수익률까지 개선하는 게 목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계기를 감안해도 수책위에서 기금 수익률 이외의 가치를 앞세울 여지는 크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가 감독기관의 실패,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반성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시작됐다.

매일경제신문이 집계한 결과 지난해 수책위가 반대 의견을 낸 안건 비중은 전체의 32.5%였는데, 이는 전년도 22%에서 10%포인트 넘게 증가한 수치다. 전년도에 비해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 대한 반대가 크게 늘어난 점은 눈에 띈다.

수책위로 회부되는 안건이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한 만큼 기업들도 점진적으로 주주활동에 적응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가 점차 국제기준에 맞춰 변화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존 오너 일가와 투자자본이 갈등을 빚는 일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재벌 3세 체제로 접어들며 오너 일가 지분이 희석되는 것도 재벌가의 내부 갈등이나 외부 공격이 늘어나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추세에 대해 한 전임 수책위원은 "각종 사모펀드·행동주의 투자자들과 비교하면 국민연금은 경영권을 위협할 일도 없고, 사회적인 감시도 많이 받는 기관"이라며 "실제로 기존 경영진에 우호적인 판단을 내릴 때도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합리적인 주주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해석했다.

다만 주총을 여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책위로 안건이 회부되는 것이 당장은 부담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 주주권행사팀장 출신인 문성 법무법인 율촌 파트너 변호사는 "수책위에 회부되지 않는 안건은 주로 과거 관행이나 기준에 따라 정량적 판단으로 의결권 행사 방향이 정해진다"며 "반면 수책위로 넘어간 안건은 위원들 사이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수책위 차원에서 의결 안건 수를 늘려온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2022년부터 국민연금의 지분이 높은 기업들은 특별한 논쟁 사안이 없더라도 수책위가 정기주총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의결권 행사 통계에서도 2022년이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으며 이후 사회적 논란이 있는 안건이 늘어나며 점증하는 추세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들은 현임 회장이 측근 위주로 인사를 내 '주인 없는 회사'란 비판에 직면하곤 한다"면서 "주로 정기주총에 이런 안건이 많이 상정되는데, 수책위를 통해 견제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수책위

2018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전담하기 위해서 출범한 자문기구. 이사해임과 사외이사 선임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 여부를 판단한다. 외부 전문가 9인으로 구성됐다.

[문재용 기자]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1.08 05:43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