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짓누르는 빚 5800조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김제림 기자(jaelim@mk.co.kr), 이윤식 기자(leeyunsik@mk.co.kr)
입력 : 2024.12.04 01:20:22 I 수정 : 2024.12.04 13:45:04
입력 : 2024.12.04 01:20:22 I 수정 : 2024.12.04 13:45:04
가계 이자 갚느라 씀씀이 줄이니 내수부진 심화
기업 자금난·경기침체 이중고에 투자 엄두 못내
정부 국가채무 급증에 재정 풀고 싶어도 못풀어
벌어서 이자 못갚는곳 속출
코스피 200대 기업 중 30곳
영업이익으로 이자 감당 못해
LG화학·SK케미칼·호텔신라
업황 침체되며 고금리에 신음
"경기 어둡고 美보호주의 우려"
500대 기업중 70% 투자 보류
가계·기업·정부가 짊어진 막대한 부채가 대한민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3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11월 말 한국의 가계·기업·정부부채 합은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 5800조원에 달한다. 연말에는 6000조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기업부채는 고금리 상황과 맞물려 한계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불렀다. 이자를 갚느라 씀씀이가 줄어든 가계는 고물가에 지갑을 닫으면서 내수 부진을 가속화했다. 경기 부양의 마중물 역할을 하던 정부는 부채 부담 때문에 섣불리 재정 투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업부채는 지난해 말 2734조원으로 GDP 대비 122.3%를 기록했다. 2019년 GDP 대비 101.3%였던 기업부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증했다. 코로나 시기 한계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과 대기업의 영업 자금, 시설 투자 자금 수요가 늘어난 것이 원인이다. 늘어난 부채는 2022년 이후 고금리가 이어지며 기업 자금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소기업은 물론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회사들 상당수도 영업이익이 회사채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면서 내년 경영 계획을 세우기 힘든 상황이다.
다소 주춤하던 가계부채는 고금리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 3분기 말 가계신용은 1913조8000억원이다.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어서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옮겨붙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높은 이자 부담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 내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소비 수준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줄어 역대 최장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 가계가 돈을 맡기고 기업이 이를 빌려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은 가계가 돈을 빌리고 있다"며 "쓸 돈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중국 경기 침체와 과잉 생산에 직격탄을 맞은 국내 화학·철강업을 비롯해 내수 관련 업종의 이익이 급감하면서 올해 코스피 시총 상위 회사 200곳 중 30곳(15%)이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3분기 누적 기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코스닥은 시총 상위 회사 150곳 중 45곳(30%)이 이자보상배율 1배 이하였다. 모두 작년보다 숫자가 늘어났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로 유지되면 자본금에서 계속 이자비용이 나가기 때문에 자본금이 줄어들고 재무 상태가 악화한다.
작년에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상이었다가 올해 1배 이하로 떨어진 기업은 SK, 코스모화학, 현대제철, 포스코퓨처엠, 호텔신라,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다. 포스코퓨처엠, LG화학, SK이노베이션은 모두 전기차 캐즘의 영향 아래 중국 배터리 업계의 공습마저 한층 더 심해졌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면서 올해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이미 5월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 영업손실의 영향으로 SK케미칼의 연결기준 이자보상 배율은 작년 3.26배에서 올해 -0.56배 낮아졌다.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내수 위주 산업이라고 해서 빚 부담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고금리에 건설업, 유통업 등이 위축되면서 후방 산업에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시멘트 업계처럼 차입금 비율이 대체로 낮은 산업마저도 일감이 줄어드니 결국 영업이익에 비해 이자비용 비율은 커지는 구조다.
한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는 팔려면 시행사들이 신규 건설 사업을 시행하고 건설사들이 착공해야 하는데, 금리 부담이 큰 상황에서 시행사들이 신규 발주할 유인이 없으니 시멘트도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은 아직 내년 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않았거나 투자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22곳 중 68%는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거나 투자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대기업 대다수가 경영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소 주춤하던 가계부채는 고금리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 3분기 말 가계신용은 1913조8000억원이다.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어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옮겨붙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높은 이자 부담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 내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 가계가 돈을 맡기고 기업이 이를 빌려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은 가계가 돈을 빌리고 있다"며 "쓸 돈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풀어야 하지만 국가부채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11월 말 기준 국가채무는 1190조4000억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말 640조8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는 문재인 정부에서 현금성 지원을 늘리면서 2배 가까이 늘었다.
국가채무가 이미 GDP 대비 50% 선을 넘은 데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복지 분야 의무지출 급증이 예견돼 있어 섣불리 재정 지출을 늘릴 수 없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는 확장 재정이 필요한 시점인데 정부가 주저하고 있는 것은, 향후 악화될 수밖에 없는 재정 건전성을 미리 잡겠다는 것"이라며 "기업 투자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맞춤형 재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영욱 기자 / 김제림 기자 / 이윤식 기자]
기업 자금난·경기침체 이중고에 투자 엄두 못내
정부 국가채무 급증에 재정 풀고 싶어도 못풀어
벌어서 이자 못갚는곳 속출
코스피 200대 기업 중 30곳
영업이익으로 이자 감당 못해
LG화학·SK케미칼·호텔신라
업황 침체되며 고금리에 신음
"경기 어둡고 美보호주의 우려"
500대 기업중 70% 투자 보류
가계·기업·정부가 짊어진 막대한 부채가 대한민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3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11월 말 한국의 가계·기업·정부부채 합은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는 5800조원에 달한다. 연말에는 6000조원에 근접할 전망이다.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기업부채는 고금리 상황과 맞물려 한계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불렀다. 이자를 갚느라 씀씀이가 줄어든 가계는 고물가에 지갑을 닫으면서 내수 부진을 가속화했다. 경기 부양의 마중물 역할을 하던 정부는 부채 부담 때문에 섣불리 재정 투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업부채는 지난해 말 2734조원으로 GDP 대비 122.3%를 기록했다. 2019년 GDP 대비 101.3%였던 기업부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증했다. 코로나 시기 한계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과 대기업의 영업 자금, 시설 투자 자금 수요가 늘어난 것이 원인이다. 늘어난 부채는 2022년 이후 고금리가 이어지며 기업 자금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소기업은 물론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회사들 상당수도 영업이익이 회사채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면서 내년 경영 계획을 세우기 힘든 상황이다.
다소 주춤하던 가계부채는 고금리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 3분기 말 가계신용은 1913조8000억원이다.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어서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옮겨붙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높은 이자 부담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 내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소비 수준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줄어 역대 최장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 가계가 돈을 맡기고 기업이 이를 빌려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은 가계가 돈을 빌리고 있다"며 "쓸 돈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중국 경기 침체와 과잉 생산에 직격탄을 맞은 국내 화학·철강업을 비롯해 내수 관련 업종의 이익이 급감하면서 올해 코스피 시총 상위 회사 200곳 중 30곳(15%)이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3분기 누적 기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코스닥은 시총 상위 회사 150곳 중 45곳(30%)이 이자보상배율 1배 이하였다. 모두 작년보다 숫자가 늘어났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로 유지되면 자본금에서 계속 이자비용이 나가기 때문에 자본금이 줄어들고 재무 상태가 악화한다.
작년에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상이었다가 올해 1배 이하로 떨어진 기업은 SK, 코스모화학, 현대제철, 포스코퓨처엠, 호텔신라,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다. 포스코퓨처엠, LG화학, SK이노베이션은 모두 전기차 캐즘의 영향 아래 중국 배터리 업계의 공습마저 한층 더 심해졌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면서 올해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이미 5월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 영업손실의 영향으로 SK케미칼의 연결기준 이자보상 배율은 작년 3.26배에서 올해 -0.56배 낮아졌다.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내수 위주 산업이라고 해서 빚 부담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고금리에 건설업, 유통업 등이 위축되면서 후방 산업에까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시멘트 업계처럼 차입금 비율이 대체로 낮은 산업마저도 일감이 줄어드니 결국 영업이익에 비해 이자비용 비율은 커지는 구조다.
한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는 팔려면 시행사들이 신규 건설 사업을 시행하고 건설사들이 착공해야 하는데, 금리 부담이 큰 상황에서 시행사들이 신규 발주할 유인이 없으니 시멘트도 팔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대기업 10곳 중 7곳은 아직 내년 투자 계획을 확정하지 않았거나 투자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22곳 중 68%는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거나 투자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대기업 대다수가 경영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소 주춤하던 가계부채는 고금리 시기를 지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 3분기 말 가계신용은 1913조8000억원이다.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어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옮겨붙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높은 이자 부담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 내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상 가계가 돈을 맡기고 기업이 이를 빌려 투자해야 하는데 한국은 가계가 돈을 빌리고 있다"며 "쓸 돈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수 진작을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풀어야 하지만 국가부채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지난 11월 말 기준 국가채무는 1190조4000억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말 640조8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는 문재인 정부에서 현금성 지원을 늘리면서 2배 가까이 늘었다.
국가채무가 이미 GDP 대비 50% 선을 넘은 데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복지 분야 의무지출 급증이 예견돼 있어 섣불리 재정 지출을 늘릴 수 없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는 확장 재정이 필요한 시점인데 정부가 주저하고 있는 것은, 향후 악화될 수밖에 없는 재정 건전성을 미리 잡겠다는 것"이라며 "기업 투자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맞춤형 재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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