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내성 '슈퍼버그'…약 대신 파지 칵테일 '김치'로 잡는다

김민영 예일대 박사팀, 박테리아 잡는 파지 활용 내성균 치료법 국제학술지 발표"의사과학자 치료현장 문제 빠르게 해결 가능…한국도 국가적 지원 필요"
조승한

입력 : 2024.11.28 19:00:00


슈퍼박테리아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항생제 내성 슈퍼박테리아, 이른바 슈퍼버그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특정 박테리아를 잡는 박테리오파지(파지)를 여럿 조합한 '김치' 칵테일로 이를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김민영 미국 예일대 내과 박사와 폴 볼리키 미국 스탠퍼드대 감염내과 교수 연구팀은 2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파지 조합을 활용한 박테리아 감염 치료법을 발표했다.

파지는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로 특정 종류 박테리아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특징이 있다.

박테리아 표면에 존재하는 수용체 표적을 찾으면 달라붙어 DNA를 박테리아 세포에 주입해 증식하고, 결국 세포를 터트려 파괴한다.

1900년대 초반 파지를 활용한 치료법이 도입됐지만 강력한 항생제가 보급되면서 외면받아 왔는데, 최근 항생제 내성균의 등장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수용체를 표적으로 삼는 파지를 선택하고 혼합하는 방식을 개발해 특정 박테리아에 따라 파지 조합을 구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나 결핵에 쓰이는 치료제가 여러 약을 복합 처방하는 '칵테일' 요법으로 병원균 생존과 증식에 필요한 여러 경로를 동시 차단하는데 착안해, 박테리아 세포 표면의 여러 수용체를 여러 파지로 동시 공격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연구팀은 '김치'(KIMCHI) 칵테일 이란 별명을 가진 'KIM-C1' 등의 파지 칵테일을 설계했다.

슈퍼박테리아
[연합뉴스TV 제공]

이 칵테일은 감염병 임상에서 분리한 다제성 내성 녹농균 균주 153개 대상 실험에서 96% 박멸률을 달성했고, 황색포도균 균주에 대해서도 100%에 육박하는 박멸 효과를 보였다.

연구팀은 이런 접근을 통해 항생제 내성균 감염을 치료하거나 기존 항생제로 치료가 어려운 만성 감염증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김 박사는 "기존 항생제 치료로 효과가 없는 경우 칵테일을 이용할 수 있다"며 "박테리아가 파지에 대한 저항성이나 내성을 키우기 훨씬 어려운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파지 치료가 자연에서 찾은 물질인 만큼 안전성이 높고 기존 항생제와 병용할 수 있는 점 등에 강점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정 박테리아를 가진 환자군을 찾기 어려워 임상에 어려움이 있고 미국 식품의약청(FDA)과 같은 규제기관이 파지 치료제를 '맞춤형 생물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어 개발에 필요한 승인 절차가 복잡한 점이 파지 치료법의 단점으로 꼽힌다.

김 박사는 "파지가 항생제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의학에서 항생제 내성 감염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영 예일대 박사
[김민영 박사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김 박사는 파지 칵테일뿐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파지 2개에 연구자 이름을 붙이는 통상 관례와 달리 'KOR_P1', 'KOR_P2' 등 한국을 뜻하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한국 과학기술 수준을 알리려는 의도"라며 "파지들이 치료제로 개발될 때 한국의 기여를 인식할 수 있게 하려 했고, 동료 연구자들도 응원해줬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를 거쳐 예일대에서 전공의 2년 차로 근무 중인 김 박사는 자신과 같은 의사과학자가 현대 의학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저도 임상 현장에서 난치성 감염 환자를 치료하면서 기존 치료법 한계를 마주해왔다"며 "의사과학자는 이런 한계에 부딪히며 기초연구의 결과를 신속하게 임상 현장의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맞춤의학 시대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만큼 진료와 연구를 통합 수행하는 인력이 더 필요해질 것"이라며 "한국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려면 의사과학자 양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한국은 의사과학자 경력 경로가 불확실한 면이 있다"며 "임상과 연구를 병행할 수 있는 국가적 지원이 더 필요하고, 젊은 의사들이 연구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shjo@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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