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매일 추심 협박 당하는데”…채무자대리인제도, 고작 1%만 구제된다

김혜란 기자(kim.hyeran@mk.co.kr)

입력 : 2025.07.22 23:22:34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 = 연합뉴스]


불법 사금융 피해자가 늘면서 정부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채무자대리인 제도를 만들었지만, 밀려드는 신청 대비 성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해야 할 채무 건수는 전년 대비 2배 급증했지만, 이를 지원할 변호사는 오히려 2년 전보다 7명이나 줄었고 실제 소송까지 이어진 사례는 전체의 1%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22일 금융위원회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채무자대리인을 신청한 채무 건수는 3897건(채무자 962명)으로 반년 만에 지난해 전체 건수(3096건)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 같은 채무구제 신청을 처리할 변호사 수는 2023년 69명에서 지난해 61명으로 줄었다가 올해 단 1명 증원해 62명에 그쳤다. 이마저도 전담이 아닌 겸임 형태로 업무를 맡고 있다.

2020년 도입된 채무자대리인 제도는 불법 추심 피해자에게 변호사를 지원해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금융위가 운영하지만, 현행법상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만 채무자대리인을 맡을 수 있어 실무는 법률구조공단에 위탁한다. 대리인은 불법 추심 전화 대응뿐 아니라 법정 최고금리(연 20%)를 초과한 대출에 대한 반환 청구, 불법 추심 손해배상,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등을 대리한다.

특히 올해 신청자 중 95%는 불법 사금융 피해자였으며, 제도권 대부 업체에 의한 피해는 5%에 그쳤다. 피해 유형별로는 불법 채권 추심이 2339건(77.9%)으로 가장 많았고 최고금리 초과는 172건(5.7%), 두 가지 모두 해당하는 경우는 490건(16.3%)이었다.

대부분이 불법 사금융 피해자임에도 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한 탓에 대리인이 불법 추심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고, 적극적인 법적 구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실제 올해 6월 말 기준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는 43건으로 전체의 1.1%에 그쳤고, 소송 전 조정으로 피해를 구조한 사례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0건이었다.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건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채무가 정리됐는지에 대한 사후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금융위 측은 “채무 종결 여부에 대한 자료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말 종결된 1938건과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종결된 2648건은 지원 기간 만료로 종료된 사례로, 채무가 감면되거나 종결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불법 추심 전화를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당장 고통을 덜 수 있다는 것이 당국 등의 입장이지만, 지원 기간 내 실질적인 채무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불법 추심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채무자대리인 제도 지원 기간은 6개월이며, 한 차례 연장을 통해 최대 1년까지만 가능하다.

금융위원회. [사진 = 연합뉴스]


금융위는 지난 6월 예산안 심사 당시 올해 채무자대리인 신청 건수가 7200건에 이를 것으로 보고 예산 증액을 요청했으며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4억4000만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그러나 늘어난 예산이 대리인 충원에는 쓰이지 않는다. 여당 의원들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대리인 증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으나, 금융위는 법률구조공단이 법무부 산하라 금융위 예산으로는 인력을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해진다.

채무구제 신청이 급증하고 예산도 확대된 만큼 법률대응권 보장 등 실질적인 보호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는 “소송을 권유하지만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해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지막 보호막이어야 할 공적 제도가 실질적 구제에 미치지 못한다면, 피해자는 사설 채무조정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인영 의원은 “현재처럼 단순히 추심 전화를 대신 받아주는 수준에 머문다면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어려운 만큼 실질적인 피해 구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채무자대리인 제도는 취약 채무자 보호의 마지막 장치이기 때문에 법률대응권 보장이 중요하다”며 “경찰·금융당국과의 연계, 사후 관리 체계 정비 등 실효성 제고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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