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코인거래소와의 제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제휴 후 기존 대비 금융사기에 이용되는 계좌 수가 폭증했다. 이제 대세가 된 투자 상품인 코인 거래 편의성을 높이려다가 금융사기를 당하는 피해자를 늘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22일 매일경제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통계를 활용해 분석한 금융사기 이용 계좌 수 등에 따르면 빗썸과 지난 3월 말부터 제휴를 시작한 KB국민은행에서 4월 이후 금융사기 이용 계좌가 확 늘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각각 101개, 100개에 불과했던 것이 3월에 148개로 늘더니 4월에는 268개까지 치솟았다. 이후에도 6월 한 달을 제외하곤 모두 200개를 넘긴 상태다. 7월에는 17일까지 집계된 것만 208개에 달한다.
반면 KB국민은행에 빗썸과의 제휴를 넘겨준 NH농협은행은 금융사기에 이용된 계좌 숫자가 줄었다. 지난 3월 173개, 4월 219개까지 늘었던 것이 완전히 제휴가 마무리된 5월 이후엔 두 자릿수로 줄어든 것이다. 지난 5월에는 89개, 6월에는 68개 계좌만이 사기에 이용돼 5대 은행 중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실제 KB국민은행 영업 현장에서도 해당 이슈로 골치를 썩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점마다 하루에 피싱 등 피해를 입었다고 오는 사람이 1~2명씩 있는데, 상당수가 빗썸과 제휴를 맺은 이후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 그 돈으로 코인을 산 후 은행 계좌로 이체한 사람부터 아예 자기가 계좌를 열어주고 이를 빌려준 사람까지 상당히 여러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 입장에선 거래소와 제휴하면 그만큼 저원가성 예금이 많이 들어오고 신규 고객들도 확보할 수 있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실제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에 가상화폐 거래소 하나가 1개 은행과만 원화 입출금 실명계좌 제휴를 맺을 수 있는 현재 규정도 풀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코인거래소와의 제휴 이후 금융사기에 이용된 계좌 수가 폭증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신중론을 펼치고 있는 당국의 현행 유지 입장에 힘이 실린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입수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사기 이용 계좌 피해 건수를 보면 작년 한 해 동안 5대 시중은행에서만 7991건에 달하는 피해가 접수됐다. 이는 피해자가 송금·이체한 피해금이 직접 입금된 1차 사기 이용 계좌 기준이라 실제 피해 건수는 더 많을 수 있다.
금융사기에 은행 계좌가 빈번히 이용되고, 그중에서도 코인 거래를 위해 개설하는 계좌에서 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만큼 은행들도 소비자 보호에 더 신경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원은 “고객 보호는 은행 본연의 책임”이라며 “은행은 코인 거래소 유치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고객 보호 수단을 충분히 강구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