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소상공인 채무 조정을 위한 배드뱅크 설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 부실대출 확산 속도가 부쩍 빨라졌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분기 부실대출 규모는 4조25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급증했다. 2019년 2분기 이후 6년여 만에 최대치다. 6대 업종(제조·서비스·건설·부동산·도소매·숙박 및 음식업)에서 3개월 이상 연체되면서 회수 가능성이 낮은 원화·신탁대출금 등 부실대출(고정이하여신)이 그만큼 많아졌다.
문제는 영세 자영업자 부실대출 증가 속도다. 1분기 도소매업과 부동산 업종 부실대출은 각각 8666억원, 7428억원으로 역대 최대로 늘었다. 서비스업과 숙박·음식업 부실대출도 6~7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취약 부문 곳곳에 숨어 있는 폭탄도 많다. 일례로 영세 자영업자 부채는 금융당국 통계에서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는 목적이 '사업'으로 분류돼 당국 통계 체계상 가계빚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계와 마찬가지로 영세 자영업자도 상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 빚을 되갚는 측면에서 보자면 가계나 자영업자 모두 개인의 빚 부담이 있다는 뜻이다.
매일경제가 국제결제은행(BIS)과 한국은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영세 자영업자 부채는 지난해 3분기 기준 369조원으로 전년 대비 8조원이 불어났다. 국내 전체 가계빚(1929조원·1분기 기준)의 19%에 달하는 부채가 통계에 잡히지 않고 숨어 있다.
코로나19 국면에 기한을 늘려줬던 소상공인 대출 만기가 대거 돌아온다는 점도 불안하다. 금융권과 당국은 2020년부터 팬데믹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를 연장해줬는데, 9월까지 기한이 늘어난 자금 액수는 47조4000억원에 달한다. 원리금 상환 유예분(2조5000억원)까지 합치면 만기 도래 규모가 50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정책자금을 받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채무 조정부터 탕감까지 해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배드뱅크를 통해 장기 소액연체 채권을 소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고위 관계자는 "소득, 자산, 연체액수 등을 감안해 채무를 조정해주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채무 조정 사업을 벌이는 새출발기금을 강화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캠코에 5000억원을 현금 출자하면서 5000억원 안팎의 현물 출자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여부에 따라 출자 규모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배드뱅크가 정부 재정과 은행권 출연금을 통해 영세 자영업자 대출을 인수한 뒤 처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취약 부문 부채 구조조정이 시급해졌지만 무분별한 부채 탕감은 거꾸로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촉발하고, 선량한 차주들에게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과 민간 재원을 두루 활용하되 대환대출 확대 등 차주에게 상환 의무를 부여하는 정책 조합으로 '질서 있는' 부채 정리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더 이상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생계형 자영업자의 연체된 빚에 한해서 채무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채무 조정 이후에도 재기 가능성이 작은 자영업자는 과감히 퇴출시키거나 단계적으로 업종 전환을 유도하면서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