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준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박스피 탈출할 황소 기업들 키우려면 인재수혈·주주환원… 선순환 만들어야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입력 : 2025.05.25 17:04:17 I 수정 : 2025.05.25 20:43:19
코스피5000으로 향하는 길



◆ 매경 포커스 ◆



6월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권 주자들은 너도나도 성장을 외치고 있습니다. 올해 0.8%(한국개발연구원 전망치)의 경제성장이 예상되는 등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인공지능(AI) 등 신성장 산업에 100조원(민관 합동 조성)을 투자하고 상법개정안(이재명 후보), 배당소득분리과세(김문수 후보) 등을 공약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규제 완화를 위한 규제기준국가제 도입과 과학자 지원 제도 강화 등을 공약했습니다. 세 후보 모두 방법론은 다소 다르나 대규모 투자와 규제 완화를 통해 국민의 부(富)를 늘리겠다는 취지는 같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부를 늘려야 하는 걸까요?



부동산·은행 몰빵 구조에서 벗어나야



현재 한국 내 가계·정부·기업 세 주체가 어느 분야에 돈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가계는 비금융자산(부동산) 9774조원, 금융자산 5204조원을 들고 있습니다. 가계자산 중 65%가 부동산, 35%가 금융상품입니다. 정부와 기업도 자산 중 64~66%가 부동산입니다.

이 같은 자산은 은행의 '담보대출'로 뒷받침됩니다. 은행의 대출 규모는 2023년 말 기준 4401조원에 달합니다. 이 중 절반가량은 기업대출(공장 등을 담보로 잡고)로, 절반은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 등)로 구성돼 있습니다. 은행은 가계와 기업, 정부가 들고 있는 예금(약 3600조원)을 수취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출해줍니다.

여태까지 이 구조는 매우 잘 작동됐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우상향했고, 은행도 대출을 통해 이자수익을 늘려왔기 때문입니다. 4대 금융지주의 올해 1분기 이자수익은 5조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이미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높은 상황에서 계속 부동산이 우상향을 하긴 쉽지 않습니다.

특히나 저출산으로 점점 부동산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선 말이죠.

이 때문에 부동산이 아니라 '증시'를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일본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닛케이지수를 10년 새 3배 이상 상승시킨 것을 따라 하자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국내 증시는 이미 '외면'받고 있습니다. 소액주주 입장에선 투자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고, 외국인투자자 입장에선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신흥국(인도·베트남 등)에 비해 낮아져 투자 매력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국내 증시를 밸류업할 수 있을까요?







발행주식수 줄이는 투자환경 필요



자본은 규모에 따라 'VC(초기기업 투자)-IPO 상장 -코스닥(중견기업)-코스피(대기업)'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선 코스피·코스닥에 해당하는 '위 형님'들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국내 대표 기업인 이들 주가를 올리기 위해선 '저평가 현상'을 해소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은 2018년 1572조원에서 2024년 2303조원으로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수'입니다. 미국 나스닥·S&P500이 우상향하는 것과 다르게 국내 코스피·코스닥지수는 '박스권'에 갇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물적분할·인적분할·유상증자 등을 통해 발행 주식 수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플 등 미국 빅테크가 자사주를 대거 매입·소각하며 주식 수를 줄이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국내 증시는 투자자에게 좋은 환경이 아닌 셈입니다. 투자은행(IB)업계 고위 관계자는 "주가가 오르려면 수급(투자 자금 유입)과 실적 두 가지가 필요한데 거버넌스 개혁으로 수급을 개선하고, 인센티브 도입으로 실적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수급을 개선하기 위해선 투자자 보호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선 상법개정안(이재명 후보 공약)과 같은 특효가 필요합니다. 상법개정안이 이뤄지면 소액주주를 무시하는 물적분할 등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죠.

다만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개정안이 도입될 경우 경영진이 주주 눈치를 더 살필 수밖에 없게 돼 장기적인 경영에 악영향을 준다는 재계 측 의견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를 두고 "상법개정안 폐지와 특별배임죄 폐지가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이른바 절충안을 제시한 것이죠.

이 밖에도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배당소득 분리과세(김문수 후보 공약), 자사주 소각(이재명 후보 공약),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에 대한 상장폐지(거래소)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발행 주식 수를 낮추는 것은 기존 주주들에 대한 혜택으로 간주되고, 결국 이는 지수 우상향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수급뿐만 아니라 국내 대표 기업의 실적 개선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선 메리츠금융지주의 인센티브 제도가 모범 사례입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2년 지배구조를 개편하며 동시에 임직원에 대한 세부적인 성과 평가 제도, 성과자에 대한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 제도 도입 등을 추진했습니다.

그 덕분에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이 지난해 832억7000만원의 보수를 받아 금융권 '연봉킹' 자리에 올랐습니다. '인센티브 개선→인재 영입→실적 개선→주가 상승→주주환원 증대'라는 선순환을 이룬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대기업들도 사업부 분할을 통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일례로 TSMC에 비해 경쟁력을 잃었다고 평가되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를 분사한 후 미국 빅테크처럼 임직원에게 RSU(일종의 스톡옵션)를 월급의 일부로 지급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재들이 모일 테고 기술력과 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 밖에도 삼성그룹·현대자동차그룹 외에 대다수 대기업 그룹사는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비핵심 계열사를 팔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기업 인수·합병(M&A)을 담당하는 한 회계법인 고위 임원은 "최근 은행권이 신용등급이 낮은 그룹사를 대상으로 차환을 꺼리는 경향이 있어서 해당 그룹사 매물들이 많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며 "현실적으로 대기업이 큰 자금을 쓰지 못해 사모펀드(PE)가 이들 매물을 받아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중견사의 매물을 PE가 받아줄 수 있도록 PE 산업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PE에 대한 기관투자자(국민연금·교직원공제회 등) 출자를 점진적으로 늘리고, 동시에 PE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인수금융 LTV 적용 등)는 가급적 지양해야 합니다.



기술특례상장·VC 회수시장 키워야



그렇다면 VC·IPO 등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어떻게 할까요? 지난해 국내 VC 신규 투자액은 약 6조6000억원으로 2023년(5조4000억원)에 비해 늘었지만, 2021년(7조7000억원)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너도나도 AI 등 신산업에 100조원 규모 민관 펀드를 구성하겠다고 밝힌 만큼, 신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액은 점진적으로 우상향할 예정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신산업이 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가 딥시크, 유니트리 등 중국 첨단산업 중심지로 부상한 것도 막대한 정책자금과 세제 혜택뿐만 아니라 "먼저 신산업을 해보고 사후에 부작용이 있을 경우에만 규제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지침 덕분이었습니다. 규제 완화를 통해 신산업 분야에 뛰어드는 혁신가 숫자를 늘려야 합니다. 규제기준국가제(이준석 후보 공약) 같은 조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VC 투자액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VC 중간 회수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고도 강조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시리즈A·B·C 등에 따라 기업가치가 달라지는데, 투자자들 역시 중간에 투자액을 회수하려는 수요가 있습니다.

현재 스타트업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 코스닥 상장인데, 그 이전에 대기업들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면 그만큼 스타트업 창업자·투자자가 많아질 수 있습니다. 마치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 시스코가 수십 개의 사이버 보안 업체를 M&A하며 관련 생태계를 조성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동호 코리아에셋투자증권 대표는 "벤처스타트업에 한해 대기업 독과점 규제를 완화하면 대기업의 스타트업 M&A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며 "그렇게 해야 중간 회수 시장에서 회수한 투자자·창업가들이 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IPO 활성화를 위한 기술특례상장 제도 개편도 필요합니다. 2023년 매출액 뻥튀기 논란으로 불거진 '파두 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기술특례 IPO 기업에도 '예상 매출액'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술 스타트업들이 본업인 기술 개발보다 단기 매출 달성에 주로 매달리게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기 대표는 "IPO 이후 5년간 기술 진척도 목표를 설정하고, 대주주와 기존 투자자들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기간에 록업(일정 기간 주식 매매를 금지하는 것)을 걸어둘 것"을 제안했습니다. 목표를 달성해야만 록업이 해제되게끔 하면 시장 신뢰를 회복하면서 IPO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세 후보의 공약(상법개정안, 배당소득분리과세, 규제기준국가제) 등을 패키지로 묶어서 처리해야 합니다. 방법론은 달라도 지향하는 바가 같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100조원 규모의 AI 펀드 조성도 중요하지만, 100조원이라는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대기업 규제 완화·기술특례제도 개편 등을 통해 실질을 다지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본시장이 발전하면서 우리 국민의 부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나현준의 데이터로 세상 읽기'는 저출산고령화·성장동력 악화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미래 방향성에 대해서 논의해봅니다.







[나현준 기자]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5.25 22:20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