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는 한수원·웨스팅하우스…'유럽 함께·중동 따로' 합의 관측
유럽은 공동진출 우선, 중동은 韓 단독 진출 가능성 열어둔 듯커지는 원전시장, '서로 발목' 대신 '코러스' 공략이 이익 최대 판단
차대운
입력 : 2025.01.18 07:03:01
입력 : 2025.01.18 07:03:01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16일(현지시간) 지식재산권 다툼을 뒤로 하고 '팀 코러스'(Team Korea+US)로 뭉쳐 글로벌 수출 시장을 넓히자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
양측이 상호 비밀 유지 약속에 따라 협상 타결 세부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타결 핵심 조건에 주요 원전 수출 지역을 나눠 협력 수위를 유연하게 조정하자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18일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한전과 웨스팅하우스는 전통적 원전 주력 시장인 유럽 지역에서는 양측이 기본적으로 공동으로 진출을 도모하고, 같은 프로젝트를 놓고 경합하는 상황은 피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수주 과정에서 주계약자 역할을 하겠다고 직접 맞붙은 것을 계기로 지식재산권 분쟁 상황으로 치달았는데 앞으로는 공동 사업 추진을 통해 이런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유럽에서는 한때 원전 수요가 크게 위축됐고, 독일을 중심으로 탈원전 흐름도 가시화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안보 우려 고조,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전력 수요 급증 등의 영향으로 유럽을 중심으로 원전 건설 수요가 최근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탈원전 흐름에 영향받지 않고 원전을 주요 전원으로 쓰던 프랑스와 핀란드 등 국가에 더해 체코, 폴란드, 불가리아, 터키, 영국, 네덜란드 등 국가가 신규 원전 건설 추진에 나서면서 '신재생 드라이브'가 강력했던 유럽에서 원전이 다시 주요 전력 공급원으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한수원은 이번에 수주한 체코 외에도 폴란드 등지에서, 한전도 영국과 튀르키예 등 국가에서 신규 원전 건설 참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앞서 한국이 추진하던 '팀 코리아' 방식의 수출 대신 '팀 코러스'로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되면 한국 기업에 돌아가는 이익은 독자 진출보다는 적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향후 국내에서 타협 도출을 위해 어디까지 양보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와 한수원·한전은 세계 주요국 원전 시장이 다시 커지는 상황에서 설계 등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과 설계, 시공, 운영 등 능력을 갖춘 한국이 협력해 커지는 시장을 공동 공략하는 것이 양국 모두의 장기적 이해관계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루한 법적 소송에 계속 발목이 잡혀서는 사업 불확실성에 관한 발주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웨스팅하우스와의 '한배 전략'이 전체 수주 파이를 키우고,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들에 돌아가는 이익도 키울 수 있다는 인식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소송전으로 계속 끌고 가면 양쪽 모두 어디도 진출할 수 없다"며 "이번에 세계 원자력 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 동맹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고, 양국이 시장을 키워 '윈-윈(Win-win)'할 일이 많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팀 코러스'에 관한 기대감은 미국 측에서도 큰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그간 세계 원전 시장이 자국과 경쟁·대립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 장악되는 것을 우려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민간 협력을 특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성명을 내고 "민간 원자력 분야에서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면서 수백억달러 상당의 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여는 우수한 성취"라며 "미국과 한국의 민간 원자력 에너지 협력은 가장 높은 비확산 기준을 준수하면서 세계 시장에 매우 경쟁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환영했다.
지식재산권은 공고하지만 시공 능력은 부족해 제3국 원전 건설에 핵심 파트너가 필요한 웨스팅하우스로서도 세계적으로 강력한 원전 산업 생태계를 보유한 한국과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실제로 웨스팅하우스는 최근 한국 현대건설을 사업 파트너로 삼아 총사업비 20조원 규모의 불가리아 원전 수주에 성공하면서 '팀 코러스' 차원의 협력 시너지 효과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울러 한국이 공들여 개척해온 신흥 시장인 중동에서는 '팀 코리아' 차원의 독자 진출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 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UAE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신규 원전 건설 참여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단독 수주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중동 같은 경우 유력 사업이 많은데 조만간 성과가 나오게 되면 이번 합의가 어떻게 시장에서 작동하게 되는지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a@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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