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진화한 보이스피싱, AI로 막는다…의심계좌 포착되면 즉시 차단도
이용안 기자(lee.yongan@mk.co.kr), 양세호 기자(yang.seiho@mk.co.kr), 안정훈 기자(esoterica@mk.co.kr)
입력 : 2025.07.28 22:02:18
입력 : 2025.07.28 22:02:18

A씨는 어느 날 본인이 보이스피싱에 속아 거액의 돈을 송금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B은행에 연락해 자신이 B은행 계좌로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렸다. B은행이 이 정보를 국가 대응 컨트롤타워인 ‘보이스피싱 인공지능(AI) 플랫폼’에 올리자 C·D은행은 같은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즉각 지급정지 조치를 취했다. 통신사는 A씨가 B은행에 알린 범죄조직 연락처 정보를 확인해 곧바로 관련 휴대폰을 이용 정지시켰다.
정부가 추진 중인 보이스피싱 컨트롤타워가 연말 설치되면 이 같은 장면이 일상이 된다. 지금은 피해자가 일일이 은행에 별도로 신고하지 않으면 사기의심계좌에 대해 일괄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하지만 플랫폼이 구축된 후에는 한 번의 신고로 모든 기관에서 통합 대응이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는 28일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AI 플랫폼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보다 빠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보이스피싱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피해 의심자 연락처, 범죄자 계좌 등 즉각 공유가 필요한 정보는 가공 없이 즉시 필요한 기관에 공유된다는 점이다. 이를 받은 금융사는 즉각적으로 범죄자 계좌 지급 정지에 나설 수 있다.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에는 금융사 134곳, 통신 3사, 경찰 등 수사기관이 대거 참여해 의심계좌 정보를 신속히 공유해 지급정지 등 대응에 나선다. 이렇게 취합된 정보는 AI 모델로 분석해 금융권의 범죄 계좌를 사전 차단하는 데 사용된다.
현재 개별 금융사들은 각자가 보유한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통해 범죄 의심계좌를 탐지해 지급정지 등 조치에 나서고 있지만 회사 간 정보 공유가 늦어 적기에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자사 고객 정보에 한정되던 정보가 전 금융·통신·수사기관 정보망으로 통합되면 이상거래탐지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이전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보는 긴급공유 필요정보와 AI 분석정보로 나눠 활용된다. 긴급공유 필요정보는 피해의심자나 가해의심자 연락처 등 즉각적인 공유가 필요한 정보다. 이를 받은 금융사는 해당 명의의 계좌를 바로 지급정지할 수 있다. 잠재적인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고 동시에 자금 도피처까지 신속하게 차단할 수 있게 된다.
AI 분석정보는 여러 금융사 계좌 중 보이스피싱 의심계좌의 특징을 분석해 사전에 식별하기 위해 집중하는 정보다. 최근 계좌개설 내역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당장은 사기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향후 보이스피싱이 일어날 수 있는 패턴을 분석해 만들어진 정보다. 금융사는 이 정보로 보이스피싱 범죄 의심 계좌를 사전에 지급정지할 수 있다. 수사기관에서는 범죄 취약계층에 대한 예방 정책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관련 정보의 양과 질이 개선되면 금융권 간 이상거래 탐지능력 격차도 줄어들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기술이 부족한 제2금융권으로 범죄가 몰린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사전에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범죄계좌를 지급정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나날이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사기수법에 대응하기 위해선 추가 대책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특히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가 지난해 8000억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김원충 서울남대문경찰서 수사팀장은 “금융사의 계좌를 거치지 않고 보이스피싱으로 받은 수표를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꾸는 ‘수표 편취’로 자금을 탈취하는 범죄 유형이 실무적으로 가장 적발하기 어렵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분야에서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윤상 서울경찰청 수사팀장은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이 설치된 휴대폰 관련 정보를 수사당국에서 입수해도 법령상 제한으로 금융사에 정보를 공유하기 어려운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에서 보이스피싱 업무를 담당한 송재철 단양지부장은 “노년층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언론매체를 활용해 새로운 범죄 수법 대응 요령을 적극 알려야 한다” “알뜰폰이나 1인 법인 통장개설 등 보이스피싱에 활용되는 길목을 차단하는 데도 신경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는 앞으로 전문가 간담회 등 다양한 경로로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보이스피싱 AI 플랫폼 구축은 금융위가 구상 중인 여러 방안 중 첫 사례일 뿐”이라며 “오늘 이 자리뿐 아니라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실효성 있게 반영해 효과적으로 보이스피싱을 근절해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