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위스키 다크호스...호주 태즈메이니아 양조장 르포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입력 : 2025.06.08 12:19:49
태즈메이니아에만 위스키 양조장 150여 곳
짧은 역사에도 세계 위스키 품평회서 잇단 수상
현지서 가장 대규모 ‘그린뱅크스 양조장’ 방문
연 300만리터 설비...나머지 양조장 전체보다 커
자체 브랜드 이외에 해외 주문받아 위탁 생산도
최첨단 설비와 소프트웨어...직원 2명으로 충분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그린뱅크스 양조장 내부 모습.


호주 남부에 위치한 섬 태즈메이니아를 돋보이게 하는 상품이 하나 있다. 바로 위스키다. 세계 주류 시장에서 태즈메이니아 위스키가 얼마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지를 아는 사람은 국내에 많지 않다.

사실 호주는 위스키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나라다. 영국인 이민 초기에는 호주에서도 위스키가 일부 생산되기도 했지만 이후 명맥이 끊기면서 최근까지 호주는 위스키의 불모지였다. 그러던 것이 1992년 태즈메이니아에 처음으로 위스키 증류소가 생겨난 이후 빠르게 증가해 지금은 태즈메이니아에만 위스키 증류소가 무려 150곳을 넘을 정도로 늘었다. 태즈마니어 덕분에 호주가 세계 위스키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태즈메이니아 최대 규모 위스키 양조장을 찾았다. 바로 그린뱅크스 양조장(Greenbanks Distillery)이다.

호즈 태즈메이니아 그린뱅크스 양조장 내부에 있는 연속식 증류기 모습.


태즈메이니아 주도 호바트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는 소도시 브릿지워터. 주변이 농지로 둘러싸여 한적한 곳에 그린뱅크스 양조장이 자리잡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도 양조장 건물이 꽤나 크다. 방문객을 직접 맞이한 휴 록스버그 CEO는 먼저 태즈메이니아산 위스키에 대한 근황부터 알렸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는 각종 세계 위스키 품평회에서 매번 수상작을 배출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산량이 부족해 시장에서 태즈메이니아 위스키를 구하기 어렵다는 고객들 불만이 많이 들립니다. 해외에서도 공급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물량이 없어 수출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태즈메이니아 위스키가 이 정도로 인기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린뱅크스 양조장의 모든 설비는 자동화율이 높아 터치스크린 조작만으로 공장 가동이 가능하다. 연간 300만리터 생산 규모에도 직원 2명이 운영할 수 있는 이유다.


록스버그 CEO는 “태즈메이니아에 있는 양조장들 대부분은 개인이나 부부, 혹은 친구끼리 운영하는 소규모 양조장이다보니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그린뱅크스 양조장을 설립한 것은 이 같은 태즈메이니아 위스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스코틀랜드의 위스키(순알콜 기준) 생산량이 연간 5억리터 정도로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일본이 대략 1억~2억리터 정도로 추정된다”며 “이에 비해 태즈메이니아 생산 규모는 50만리터로 일본의 2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록스버그 CEO는 “태즈메이니아 위스키는 생산량이 적지만 불과 2주 전에도 세계 위스키 품평회에서 여러 양조장이 수상을 했을 정도로 평가가 좋다”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에 이어서 세계 6번째로 위스키의 잠재력이 큰 곳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출신의 록스버그 CEO는 이 같은 문제의식으로 투자자들에게 그린뱅크스 양조장 설립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설명했고, 수천만달러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계획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무려 60여 명에 달했다. 특정한 기업이 아니라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린뱅크스 양조장에서 만들어 낼 태즈메이니아산 위스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다른 2명의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2021년 그린뱅크스를 설립한 뒤 18개월간 증류소를 건립해 작년 첫 배치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위스키를 실제 생산한 기간이 불과 1년밖에 안되는 신생 양조장임에도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이유는 그 규모와 최첨단 생산 설비 때문이다.

그린뱅크스의 존 슬래터리 양조책임자가 최종적으로 증류되어 나온 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술을 오크통에서 최저 3년 이상 숙성하면 위스키가 완성된다.


존 슬래터리 양조책임자는 “그린뱅크스의 생산 규모는 연간 300만 리터로 태즈메이니아 다른 모든 양조장 생산능력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며 “생산설비도 현존하는 최첨단 설비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돼 있어 자동화율과 생산효율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연속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그린뱅크스 자체 브랜드 위스키 뿐만 아니라 계약에 따라 생산을 대행하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다”며 “최근 일본 위스키 업체가 주문한 위스키를 생산해 주는 등 해외 고객과 생산대행 계약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니 술 익는 냄새가 은은하다. 보리와 같은 곡물을 빻는 분쇄기를 비롯해 곡물을 당화시키는 매쉬탱크, 당화된 곡물에 효모를 섞어 알콜을 만드는 발효탱크, 발효된 맥주를 증류하는 연속 증류기 등 대형 설비들이 연이어 연결돼 있다. 양조장 규모도 큰 만큼 꽤나 많은 직원들이 일할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양조장내 모든 설비들이 첨단 소프트웨어로 운영되기 때문에 터치스크린 조작만으로 양조장 가동이 가능했다.

그린뱅크스 직원이 새 오크통을 사용하기 전에 내부를 불에 태우는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슬래터리 양조책임자는 공장 한 켠에 있는 터치스크린을 손으로 짚으면서 “수백 개에 달하는 밸브와 스위치 등 장치를 화면상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다”며 “모든 공정의 각 단계별 상황을 모니터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어 두 명의 직원으로 양조장을 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곳 양조장의 자랑 중 하나는 태즈메이니아 경제에 대한 기여가 크다는 점이다. 태즈메이니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10%를 이 양조장에서 처리할 수 있다. 더구나 양조장에서 술을 만들다가 나오는 부산물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함으로써 환경에 대한 부담도 줄이면서 농가에 보탬이 되고 있다. 슬래터리 양조책임자는 “위스키를 생산하고 마지막으로 남는 물과 곡물 찌꺼기를 인근에 있는 대형 낙농가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알콜은 하나도 없고 수분과 영양분이 있어 농가들에게 사료비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년 한·호주 언론교류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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