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청정바다 태즈메이니아...‘스마트 양식’ 메카로 부상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입력 : 2025.06.08 11:58:18 I 수정 : 2025.06.08 13:08:36
[호주 첨단 스마트양식 현장을 가다]
연어 양식장 AI로 원격 관리하는 ‘휴온’
양식밀도 1% 최저...프리미엄급 연어 생산
AQ1시스템즈는 새우 자동급이시스템 공급
고성능 음파탐지기로 새우가 먹는 소리 파악
씨포레스트는 육상서 양식한 토종 해조류로
소가 내뿜는 메탄 줄이는 사료첨가제 개발


호주 태즈메이니아에 있는 연어 양식업체 휴온 본사 컨트롤룸에서 직원들이 양식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원격으로 양식장을 관리하고 있다.
호주 남단에 위치한 섬 태즈메이니아. 남극에 가장 가까운 섬 중 하나여서 남극 대륙으로 가는 주요 해상로의 거점이 되는 곳이다. 거대한 호주 대륙에 붙어 있어 작아 보이지만 남한 면적의 3분의2가 넘는 큰 섬이다.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지만 청정 해역을 품고 있어 수산 양식업의 적지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연어와 참치, 굴, 홍합, 해조류 등 태즈메이니아에서 길러지는 수산물은 품질이 좋아 시장에서 프리미엄급 대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도 태즈메이니아산 연어가 들어온다. 놀라운 사실은 태즈메이니아에서는 전통적인 수산 양식에 각종 ICT 기술을 접목한 이른바 ‘스마트 양식’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6개 주 가운데 하나인 태즈메이니아의 주도는 호바트. 호주 시드니에 이어 두 번째로 영국인 이민자들이 정착한 도시가 바로 이 곳이다. 남미 아르헨티나 최남단 푼타아레나스와 함께 남극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대표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카메라와 AI 활용해 본사에서 양식장 원격 관리
휴온 본사 컨트롤룸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에 양식장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연어들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태즈메이니아에서 연어를 양식하는 대표 업체인 휴온(HUON) 을 찾았다. 직원 수가 1000명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그런데 연어를 어떻게 양식하고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회사가 기자를 데려간 곳은 바닷가가 아니라 호바트 시내 한복판의 본사 건물이었다.

사무실 한 쪽에 별도로 마련된 컨트롤 룸에 들어서니 예닐곱 명의 직원들이 대형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컴퓨터를 조작하느라 바쁘다. 한 사람당 4~5개씩 배치된 대형 모니터 화면에는 양식장에서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연어들 모습이 선명하다. 직원들은 한 화면으로는 연어들을 관찰하고, 다른 화면으로는 각종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컴퓨터 자판을 조작하고 있다. 도대체 이 곳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휴온의 제이슨 울리 컨트롤 룸 매니저는 “가두리 양식장 안에 설치한 카메라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연어 크기와 마릿 수를 계측하고, 연어가 먹이를 남기지 않도록 정확하게 투입하는 것을 이 곳에서 컨트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양식장 현장에서 바지선을 타고 다니면서 사람이 눈과 손으로 보고 하던 일을 지금은 이 곳에 앉아서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곳 컨트롤 룸에 있는 직원 한 명이 담당하는 가두리 양식장 숫자는 무려 40개에 달한다.

펠릿 형태 사료 투입량 AI가 정확히 파악
휴온이 운영하는 연어 양식장 모습. 양식밀도가 1%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사진=휴온 웹사이트 캡처>
이처럼 AI를 활용한 연어 양식의 장점은 단순히 현장 인력을 줄이는 것에만 있지 않다. 이전에 사람이 연어에게 먹이를 줄 때는 남아 버려지는 것이 많았지만 AI를 활용해 정확하게 먹이를 주게 되면 낭비되는 먹이가 없어 사료비 절감이 가능하다. 울리 매니저는 “펠릿(덩어리) 형태로 만들어진 먹이를 연어 가두리 양식장에 투입한 뒤 AI와 카메라를 이용해 그 움직임을 추적한다”며 “펠릿이 몇 개 투입되었고, 연어가 먹지 않고 남은 펠릿이 몇 개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가장 적절한 양의 사료를 급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양식하는 연어가 총 900만마리로 AI를 활용한 이후 절감한 사료비가 연 900만달러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휴온이 길러내는 태즈메이니아산 연어는 이처럼 기술에서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높은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어 세계 연어 시장에서 프리미엄급 대접을 받는다. 롭 만 수출 매니저는 “동일한 부피의 바닷물에서 어류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양식 밀도가 태즈메이니아 연어는 세계 최저 수준인 1%에 불과하고, 연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야간에만 포획 작업을 하는 등 동물복지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양식장에서 연어를 잡아 올린 뒤 포장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로 보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장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매우 신선한 연어를 공급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전세계 새우 양식장 10%에 자동급이장치 공급
필립 화이트 AQ1시스템즈 CTO가 새우 자동급이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휴온 본사를 나와 자동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소도시 글레노키에 있는 AQ1시스템즈로 향했다. 이 곳은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첨단기기 제조업체다. 회사가 설립된 지 어느덧 30년이 넘어 스마트 양식업계에서는 명성이 자자하다. 다양한 제품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AQ1시스템즈가 자랑하는 두 가지 제품은 새우 자동급이 시스템과 어류 계측 솔루션이다.

새우 자동급이 시스템은 말 그대로 새우 양식장에서 먹이를 자동으로 주는 설비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 판매한 자동급이 시스템의 누적 판매 대수는 3만7000여 대에 달한다. 이 시스템으로 생산되는 새우가 전 세계 새우 생산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다. 이 자동급이 시스템의 핵심은 음파 탐지 기술이다. 필립 화이트 CTO는 “최첨단 고감도 마이크가 장착된 수중청음기를 활용해 새우가 먹이를 먹을 때 내는 소리를 AI로 분석해 가장 적절한 수준으로 먹이를 주는 방식”이라며 “새우가 먹이를 먹을 때 위아래 턱이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는 사실에 착안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새우는 온도나 날씨, 심지어는 달이 얼마나 기울었는지에 따라 식욕이 달라진다”며 “새우의 먹이 활동이 이처럼 예민하기 때문에 먹이를 낭비없이 급이함으로써 사료비를 절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AI로 참치 계측...하루종일 하던 일 1시간에 끝
AQ1시스템즈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이 화이트 CTO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윤희문 머신러닝 엔지니어, 김유창 소프트웨어 개발자.
AQ1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첨단 장비는 어류 계측 시스템이다. 연어와 참치 양식장에서 활용되는 이 시스템은 카메라와 AI를 활용해 어류의 크기와 숫자를 정확하게 계측한다. 화이트 CTO는 “예컨대 참치 양식장의 경우 정해진 쿼터 내에서 참치를 바다에서 잡은 뒤 양식장으로 옮겨 크게 키우는 방식으로 운영되다보니 포획한 참치 수를 빠르고 정확하게 세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거에는 사람이 참치 숫자를 세다보니 하루 종일 걸렸지만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1시간에 카운팅 작업을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군다나 일정 크기 이하의 작은 참치는 곧바로 풀어줘야 하는데 AI가 자동으로 크기를 계측하다보니 빠르고 정확하다”고 덧붙였다. 독보적인 기술력 덕분에 이 회사의 고객 중 95%는 해외에 있다.

태즈메이니아 토종 홍조류 육상 시설에서 양식
씨 포레스트에서는 태즈메이니아 토종 홍조류를 육상에서 양식하고 있다. 사진은 실내에서 일정 크기까지 해조류를 배양하는 모습이다.
이번엔 태즈메이니아 앞바다로 향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1시간30분을 달리자 스프링만을 끼고 있는 트리아번나시가 나타났다. 바람도 불지 않아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끼고 씨 포레스트(Sea Forest)라는 해조류 양식업체가 있었다. 양식장이지만 놀랍게도 바다에는 아무런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실험실 같은 곳에 설치된 대형 유리관 안에 붉은 색을 띤 해조류가 자라고 있었다. 홍조류 크기가 대략 3cm 정도가 될 때까지 배양하는 곳이다.

씨 포레스트의 스테판 터너 공동창업자는 붉은 해조류의 정체에 대해 “여기서 길러지는 해조류는 태즈메이니아 토종 홍조류로 아스파라곱시스(Asparagopsis)로 불린다”며 “이 홍조류에 존재하는 특별한 선세포가 메탄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활동혼합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소개했다. 이 회사에서는 홍조류의 이 같은 성질을 활용해 반추동물에게 먹이는 사료첨가제를 만들고 있다. 이 홍조류로 만든 첨가제를 사료에 섞여 먹이면 소나 양, 염소 등이 트림을 하면서 내뿜는 메탄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실내서 배양된 홍조류를 육상으로 옮겨 양식
씨 포레스트가 운영하고 있는 육상 양식장 모습. 실내에서 배양된 홍조류를 이곳으로 옮겨와 양식한다.
이 곳에서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일본 출신의 마사유키 타츠미 박사는 “유럽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의 10% 정도가 가축에서 나오고,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보다 24배 정도 강한 만큼 가축의 메탄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지구 환경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아스파라곱시스로 만든 첨가제를 먹이면 소가 발생시키는 메탄가스의 80%를 저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타츠미 박사는 “뿐만 아니라 이 첨가제를 활용하면 전체적인 사료비를 줄여주는 데다 소가 불필요한 메탄가스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육류 생산성도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조류가 건물 안에서 일정한 크기로 자라면 바다 양식장이나 육상에 있는 대형 수조식 양식장으로 옮겨 재배한다. 건물 내부에서 계속 키울 수도 있지만 산소공급장치 등 다양한 시설이 필요해 생산 비용이 비싸진다. 타츠미 박사는 “씨 포레스트는 현재 양식장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1800ha 해상과 30ha 육상을 보유하고 있다”며 “생산 단가를 따지면 해상 양식장이 훨씬 유리하지만 굳이 육상 양식장을 활용하려는 것은 바다가 없는 다른 곳에서도 이 해조류를 생산해 사료 첨가제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홍조류 생산 플랜트 수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씨 포레스트는 이 첨가제를 다양한 분야로 공급하고 있다. 세계적인 낙농회사인 폰테라는 이 첨가제로 기른 젖소에서 짠 우유를 ‘저탄소 우유’로 판매하고 있으며, 일본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이 첨가제를 먹인 양을 활용해 저탄소 양모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저탄소 소고기 패티를 넣은 친환경 햄버거 브랜드도 있다. 터너 공동창업자는 “첨가제를 어류에 먹일 경우 면역력과 생산성이 좋아지는 것으로도 확인돼 수산 양식업체들에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년 한·호주 언론교류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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