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돈 받을 수 있는 건가요”...전례없는 회장 사재출연, 홈플 숨통 틀까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입력 : 2025.03.17 08:01:48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홈플러스 납품대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재를 출연한다. 홈플러스가 지난 4일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를 신청한 후 MBK 책임론이 확산하자 사재 출연을 통해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사재출연이란 개인이 자신의 사유 재산을 공익적인 목적이나 특정 사업을 위해 내놓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기업 경영 상황이 안 좋을 때 대기업 오너가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재출연을 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최근 태영건설 워크아웃과 관련해 태영그룹 대주주 일가가 사재출연 484억원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회사 인수 후 경영에 실패해도 그동안 사재출연을 하지 않았다. 사모펀드는 복수의 기관투자자(LP)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을 사들여 경영하는 위탁운용사(GP)이기 때문이다.

위탁운용사는 재벌 그룹 회장처럼 대주주가 아니다. LP 역시 고수익을 위해 사모펀드에 출자한 투자자일 뿐이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업계를 두고 “수익은 고스란히 가져가고, 실패 시 책임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그런 점에서 김 회장이 사재출연 카드를 꺼낸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14일 홈플러스 기자간담회에서도 김광일 홈플러스 부회장은 김병주 회장의 사재출연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간담회에서 말씀드릴 사항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같은 날 나온 김 회장 입장문에서도 “제가 MBK파트너스의 펀딩과 투자 과정에는 관여하지만 이미 투자가 완료된 개별 포트폴리오 회사의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MBK가 ‘과도한 차입’을 통해 국내 마트 2위인 홈플러스를 망가뜨렸다는 인식이 커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대표 위탁운용사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재출연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MBK 측은 “김병주 회장은 특히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의 사재출연 규모는 현재 추산 중이다. 다만 금액이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1월 말 기준 홈플러스의 상거래채권(매입채무+미지급금)은 약 1조4605억원이다. 2월까지도 이 같은 금액이 유지됐다고 가정하면 홈플러스 상거래채권은 약 1조4000억원 규모다.

이 중 공익채권(회생 절차상 1순위 변제)이 되는 2.12~3.3 상거래채권과, 홈플러스측이 충분히 갚아줄 수 있는 우선변제으로 분류된 상거래채권(4584억원) 등을 제외할 경우에도 남은 상거래채권은 약 7000억~8000억원 내외로 추산된다.

남은 상거래채권은 크게 보아 대기업 몫과 소상공인 거래처 몫으로 나뉘는데, 홈플러스측은 이미 지난 1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기업 협력사에 양보를 요청했다.

이후 MBK 측은 김 회장이 후자인 소상공인 거래처 몫을 사재출연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현재 정확한 수치는 홈플러스와 합의해 계산하고 있다.

업계서는 적게는 수백억 원 단위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가 2023년 김 회장의 재산이 97억달러(약 13조원)라고 보도한 바 있는데, 실제 김 회장의 재산은 이보다는 적은 것으로 파악된다.

포브스 수치는 MBK파트너스 지분 100%를 근거로 추산됐는데, 김 회장은 여러 파트너와 공동으로 MBK 지분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회장이 ‘조 단위’ 재산가인 것은 분명하기에 이번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소상공인 지원 몫으로 상당 금액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홈플러스는 “책임 있는 자세로 모든 채권을 변제함으로써 이번 회생 절차로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홈플러스가 최대한 신속히 채권을 변제한다고 하지만, 정산이 늦어진 업체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소상공인과 영세업자의 범위를 정하고 채권의 성격을 파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공익채권, 회생채권, 일반 채권 등으로 분류하고 대금이 지급된 업체, 지급되지 않은 업체를 파악하고 납품주기에 따른 지급 상황도 파악한다. 지난 14일에는 업체별로 변제 계획에 따른 협의를 진행한 후 변제 계획을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알리고 있다.

이와 함께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 성과를 높이는 작업도 병행한다. 홈플러스는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홈플런을 진행했는데 매출은 전년 대비 13.4%, 고객 수는 5% 성장했다”면서 “임직원 모두 운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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