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도 수백억원 손실 가능성…휴지조각된 홈플러스 단기채권

명지예 기자(bright@mk.co.kr),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김시균 기자(sigyun38@mk.co.kr), 오대석 기자(ods1@mk.co.kr), 문재용 기자(moon.jaeyong@mk.co.kr)

입력 : 2025.03.05 20:43:55 I 수정 : 2025.03.05 21:07:27
홈플러스, 채권 상환 불투명해져
전월 CP∙전자단기사채 290억 발행
신용등급 하락하자 기업회생 신청
개인 투자자들 수천억 손실 위기

MBK관계자 “부채보다 자산 많아”
노조 “MBK, 사실상 투자금 회수만”
“모럴해저드 전형적 사례” 비판도

이복현 “티메프 사태 막아야”


빕스와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과 CJ CGV, 신라면세점 등 유통업계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대형마트 홈플러스 상품권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발생할 수 있는 상품권 변제 지연 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사진은 5일 서울에 있는 한 홈플러스. [이충우 기자]
국내 2위 마트체인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돌입 후폭풍이 거세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신청 열흘 전까지도 수십억 원 규모 단기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확인돼 기관·개인 가리지 않고 투자자 손실이 우려된다.

홈플러스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에 대한 책임론도 부상하고 있다.

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지난달 21일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를 70억원 규모로 발행했다. 만기는 6개월이었다. 이후 신용등급이 하락하자 즉각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회생신청 직전까지도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단기 운영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의구심이 확산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올해 들어서만 745억원의 단기채를 발행했다. 만기는 오는 4~8월에 분산돼 있다.

CP와 전단채는 신영증권, 한양증권, BNK투자증권 등이 발행해 타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매도했다. 당초 신용등급이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금리가 6%대로 높았다.

금융권에서는 대부분 물량이 일반 개인과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테일 부문에서 판매된 것으로 추정한다. 리스크가 높아 투자 가이드라인이 엄격한 대형 기관이 구매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회생절차 개시로 채권 상환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 우려가 있다. 홈플러스 주요 기관투자자가 자금을 성공적으로 회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메리츠금융그룹과 1조3000억원 규모 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재융자)을 통해 은행 등 기존 기관투자자로부터 받은 인수금융 대출을 차환한 바 있다.

MBK는 자산 매각을 통해 본인들의 투자금을 회수해 나갔다. 메리츠금융 등에는 확실한 담보를 제공해 손실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기관과 개인 등 소액 투자자들은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구조를 짠 것이다.

변제권 순위에 따라 채권 투자자보다 후순위로 밀리는 투자자들도 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MBK는 2015년 9월 국내 마트 2위 업체인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투자금액 총 6조원 중 7000억원을 홈플러스를 인수할 목적으로 세운 SPC(특수목적법인·한국리테일투자)가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통해 조달했다. 당시 RCPS 발행 조건은 만기 5년에 배당 3%, 만기이자율(YTM) 연복리 9%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6000억원, 나머지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1000억원 내외로 해당 RCPS에 투자했다.

홈플러스는 향후 ‘담보채권자-무담보채권자-SPC가 발행한 RCPS 투자자-SPC에 출자한 기관투자자’ 순으로 변제권을 갖게 된다. SPC 투자자 및 출자자는 기본적으로 홈플러스 지배기업인 SPC에 투자한 것이어서 채권자에 비해 후순위로 분류된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상황(EBITDA 대비 이자보상배율 0.7배)이기 때문에 만일 홈플러스가 향후 자산을 매각해 채권자에게 지급한다면, 담보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이외에는 상당수가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한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있는 RCPS 투자자(국민연금 등)와 SPC에 에퀴티 약 2조5000억원을 출자한 기관투자자 상당수가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MBK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부채보다 자산이 많아 금융채무의 원금이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회생절차를 통해 이자나 임차료 지급 등 금융채무가 한 달만 유예돼도 상거래를 통해 1000억원 수준의 잉여현금이 쌓이는 만큼, 회사가 정상화되면 변제 순서에 따라 채무가 지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홈플러스 운영이 정상화되면 향후 홈플러스 기업가치도 높아지면서 국민연금 등 투자자에게 배당, 자산 매각 등의 형태로 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2024년 6월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투기자본 MBK의 밀실·분할매각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하지만 홈플러스 노조는 “대주주 MBK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홈플러스를 완전히 망가뜨린 것”이라며 정부 개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노조 관계자는 “홈플러스 경영 위기는 MBK의 탐욕이 낳은 비극”이라며 “MBK는 홈플러스의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RCPS에 대한 배당을 지속적으로 챙겨왔고, 1조원 투자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사실상 홈플러스를 버리고 투자금 회수에만 몰두해왔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번 회생절차로 매장 폐점과 대량 해고를 우려하고 있다.

MBK가 대주주로서 자구책 마련에 소홀했던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MBK가 홈플러스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고 급작스레 기업회생절차부터 신청한 것은 더 손해 보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라며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증권회사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신청과 관련해 “홈플러스는 재무구조도 안 좋고 상당히 큰 규모의 영업손실이 여러 회계연도에서 발생해 눈여겨보고 있었다”면서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외담대) 같은 경우 정상 결제된다고 하더라도 태영건설이나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처럼 이슈가 발생할 수 있어 챙겨 보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날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금융사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면서도 “법원에서 발 빠르게 상거래 채권 관련은 영업할 수 있게 했지만, 일부 거래 업체의 대금 정산 이슈가 생길 수 있어서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모펀드(PEF)의 기업 인수에 대해서는 변화를 가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연구원에 용역을 발주해 놨다”며 “상반기 중 용역 결과가 나오면 이를 기초로 금융위원회와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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