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44사이즈만 판다"…'마른 몸 강박' 정조준
'작은 사이즈' 패션브랜드 상륙에 "자존감 내려가" vs. "상품 다양"SBS '살에 관한 고백'서 女가수들, 다이어트 괴로움 토로
이승연
입력 : 2025.01.25 05:50:00
입력 : 2025.01.25 05:50:00
'작은 사이즈' 패션브랜드 상륙에 "자존감 내려가" vs.
"상품 다양"SBS '살에 관한 고백'서 女가수들, 다이어트 괴로움 토로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이건 웬만한 '뼈말라' 아니면 못 입겠는데요.
자존감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최근 한 뷰티 유튜버가 패션 브랜드 '브랜디멜빌'(Brandy Melville)의 바지를 입어보고 내놓은 후기다.
K팝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가 입었던 그대로 따라 했던 이 유튜버는 "느낌이 아주 다르군요.
내가 마르지 않아서 그런 건가?"라며 난감해했다.
최근 국내 첫 매장을 연 이 브랜드를 두고 소비자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브랜디멜빌은 대부분 상품을 XS∼S 사이즈로만 출시하는 '원사이즈 정책'을 펼치는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마른 여성을 위한 브랜드', '44사이즈 브랜드'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이다.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브랜디멜빌 매장.
평일 오후인데도 매장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상품 사이즈를 살펴보니 일부 후드와 바지를 제외하고는 사이즈 구분이 없는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상품 태그에 '원 사이즈'(ONE SIZE)라고 적혀있거나 아예 사이즈를 적어놓지 않는 식이었다.
티셔츠 하나를 집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사이즈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티셔츠는 평균보다 작은 체구(BMI 17.1)를 가진 기자에게도 아주 딱 맞는 수준이었다.
상의는 대체로 몸에 딱 달라붙는 소재에 짧은 기장이었으며, 치마는 길이가 아주 짧아 속바지가 내장된 디자인이 많았다.
사이즈가 하나뿐이라 손님들이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옷걸이 뒤쪽까지 뒤적이거나 직원에 문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품 종류를 선택한 여성들은 마치 옷에 '도전'을 하듯 피팅룸으로 향했다.
한 여성은 친구에게 "내가 입을 수 있을까? 늘어나면 어떡해"라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국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브랜디멜빌은 상륙과 동시에 도전의 대상이 됐다.
'44만 취급한다는 브랜디멜빌 후기', '162㎝에 48㎏, 브랜디멜빌 입어보기', '마른 사람의 솔직 후기'와 같이 자신의 키·몸무게를 공개하며 브랜디멜빌을 입어보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한때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브랜디멜빌 챌린지'와 유사한 흐름이다.
이 챌린지는 브랜디멜빌을 입을 수 있을 만큼 말랐는지 확인하는 SNS 콘텐츠를 말한다.
지난해 4월 미국 케이블 채널 HBO는 브랜디멜빌이 청소년에게 왜곡된 신체관을 주입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지적한 바 있다.
브랜디멜빌과 지옥(Hell)을 뜻하는 단어를 결합해 '브랜디 헬빌(Hellville)과 패스트패션 추종자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원사이즈 정책 및 날씬한 백인 채용 관행을 꼬집었다.
'원사이즈' 논란이 확산하자 국내에선 불매 선언도 이어진다.
직장인 이은서(30) 씨는 "원사이즈 정책뿐 아니라 레이스와 리본, 곰돌이를 위주로 디자인된 옷을 보니 '예쁘고 마르고 어린 소녀만 입어주세요'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며 "그런 브랜드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이용자 'min***'는 "고른 티셔츠가 몸에 맞지 않는데 다른 사이즈는 없다.
초라하고 수치스럽지 않겠는가.
브랜디멜빌 티셔츠는 폭력이다"라고 적었다.
다만 일부 누리꾼들은 유사한 디자인의 다른 브랜드보다 저렴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대학생 김서현(24) 씨는 "국내 브랜드보다 저렴하고 옷이 다양해서 좋다"며 "만약 이 브랜드가 싫다면 안 사면 그만이다.
세상엔 다양한 옷 브랜드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브랜디멜빌에 대한 관심은 마른 몸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한 얼굴을 보여준다.
물과 소금만 섭취하는 이른바 '물단식'을 하거나, 정상이거나 심지어 저체중인데도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먹고, 음식을 씹고 뱉는 등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법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섭식장애 진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폭식증 환자는 4천115명으로 2018년(3천108명)에 비해 32% 증가했다.
이중 여성의 비중은 90%(3천686명)에 달했다.
여성 폭식증 환자 중 20대가 40%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1.5%를 차지했다.
평소에 엄격하게 식사량을 조절하다가 한순간에 충동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폭식증은 다이어트의 대표적 부작용으로 꼽힌다.
극단적 다이어트가 일상인 연예계에서도 이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말 방송된 SBS TV '바디멘터리-살에 관한 고백'에서 한승연은 아이돌 그룹 '카라'로 활동하던 시절 무리한 다이어트로 기절도 했었고 원인불명 두드러기로 7년간 고생했었다고 토로했다.
전효성은 걸그룹 시크릿으로 활동하던 시절 "늘 폭식과 요요, 부끄러움, 자기환멸의 연속이었다"고 돌아봤다.
걸그룹 씨스타로 활동했던 소유도 외모와 몸무게에 대한 압박으로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하면서 "요즘 친구들이 마른 것에 대한 강박이 심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또 가수 화사는 혹독한 다이어트에 고통받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몸무게라는 키워드가 이제 너무 지겹다.
우리 모두 가볍게 생각해보면 몸무게보다 더욱 유쾌한 것들이 많이 보일 것 같다"고 했다.
외모 강박을 주제로 한 보디 호러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연 데미 무어는 이달 초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 "우린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다면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한물간 여배우 엘리자베스가 약물을 통해 젊음을 되찾으며 점차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마른 몸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인해 섭식장애뿐 아니라 월경불순, 무월경, 골다공증, 빈혈을 앓고 있는 젊은 여성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며 "극단적 다이어트는 기초대사량을 감소시켜 되레 살이 잘 찌는 체질이 되는 역효과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작은 옷 입어보기 챌린지에 대해 "일종의 놀이 문화로서 옷을 입어보고 도전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브랜드와 챌린지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남기고 생각을 공유하며 성숙한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winkite@yna.co.kr(끝)
"상품 다양"SBS '살에 관한 고백'서 女가수들, 다이어트 괴로움 토로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 "이건 웬만한 '뼈말라' 아니면 못 입겠는데요.
자존감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최근 한 뷰티 유튜버가 패션 브랜드 '브랜디멜빌'(Brandy Melville)의 바지를 입어보고 내놓은 후기다.
K팝 그룹 블랙핑크의 로제가 입었던 그대로 따라 했던 이 유튜버는 "느낌이 아주 다르군요.
내가 마르지 않아서 그런 건가?"라며 난감해했다.
최근 국내 첫 매장을 연 이 브랜드를 두고 소비자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브랜디멜빌은 대부분 상품을 XS∼S 사이즈로만 출시하는 '원사이즈 정책'을 펼치는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마른 여성을 위한 브랜드', '44사이즈 브랜드'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이다.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브랜디멜빌 매장.
평일 오후인데도 매장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상품 사이즈를 살펴보니 일부 후드와 바지를 제외하고는 사이즈 구분이 없는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상품 태그에 '원 사이즈'(ONE SIZE)라고 적혀있거나 아예 사이즈를 적어놓지 않는 식이었다.
티셔츠 하나를 집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른 사이즈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티셔츠는 평균보다 작은 체구(BMI 17.1)를 가진 기자에게도 아주 딱 맞는 수준이었다.
상의는 대체로 몸에 딱 달라붙는 소재에 짧은 기장이었으며, 치마는 길이가 아주 짧아 속바지가 내장된 디자인이 많았다.
사이즈가 하나뿐이라 손님들이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옷걸이 뒤쪽까지 뒤적이거나 직원에 문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품 종류를 선택한 여성들은 마치 옷에 '도전'을 하듯 피팅룸으로 향했다.
한 여성은 친구에게 "내가 입을 수 있을까? 늘어나면 어떡해"라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국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브랜디멜빌은 상륙과 동시에 도전의 대상이 됐다.
'44만 취급한다는 브랜디멜빌 후기', '162㎝에 48㎏, 브랜디멜빌 입어보기', '마른 사람의 솔직 후기'와 같이 자신의 키·몸무게를 공개하며 브랜디멜빌을 입어보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한때 미국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브랜디멜빌 챌린지'와 유사한 흐름이다.
이 챌린지는 브랜디멜빌을 입을 수 있을 만큼 말랐는지 확인하는 SNS 콘텐츠를 말한다.
지난해 4월 미국 케이블 채널 HBO는 브랜디멜빌이 청소년에게 왜곡된 신체관을 주입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지적한 바 있다.
브랜디멜빌과 지옥(Hell)을 뜻하는 단어를 결합해 '브랜디 헬빌(Hellville)과 패스트패션 추종자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원사이즈 정책 및 날씬한 백인 채용 관행을 꼬집었다.
'원사이즈' 논란이 확산하자 국내에선 불매 선언도 이어진다.
직장인 이은서(30) 씨는 "원사이즈 정책뿐 아니라 레이스와 리본, 곰돌이를 위주로 디자인된 옷을 보니 '예쁘고 마르고 어린 소녀만 입어주세요'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며 "그런 브랜드에 돈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인스타그램 이용자 'min***'는 "고른 티셔츠가 몸에 맞지 않는데 다른 사이즈는 없다.
초라하고 수치스럽지 않겠는가.
브랜디멜빌 티셔츠는 폭력이다"라고 적었다.
다만 일부 누리꾼들은 유사한 디자인의 다른 브랜드보다 저렴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대학생 김서현(24) 씨는 "국내 브랜드보다 저렴하고 옷이 다양해서 좋다"며 "만약 이 브랜드가 싫다면 안 사면 그만이다.
세상엔 다양한 옷 브랜드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브랜디멜빌에 대한 관심은 마른 몸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한 얼굴을 보여준다.
물과 소금만 섭취하는 이른바 '물단식'을 하거나, 정상이거나 심지어 저체중인데도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먹고, 음식을 씹고 뱉는 등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법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섭식장애 진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폭식증 환자는 4천115명으로 2018년(3천108명)에 비해 32% 증가했다.
이중 여성의 비중은 90%(3천686명)에 달했다.
여성 폭식증 환자 중 20대가 40%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1.5%를 차지했다.
평소에 엄격하게 식사량을 조절하다가 한순간에 충동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폭식증은 다이어트의 대표적 부작용으로 꼽힌다.
극단적 다이어트가 일상인 연예계에서도 이제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말 방송된 SBS TV '바디멘터리-살에 관한 고백'에서 한승연은 아이돌 그룹 '카라'로 활동하던 시절 무리한 다이어트로 기절도 했었고 원인불명 두드러기로 7년간 고생했었다고 토로했다.
전효성은 걸그룹 시크릿으로 활동하던 시절 "늘 폭식과 요요, 부끄러움, 자기환멸의 연속이었다"고 돌아봤다.
걸그룹 씨스타로 활동했던 소유도 외모와 몸무게에 대한 압박으로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하면서 "요즘 친구들이 마른 것에 대한 강박이 심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또 가수 화사는 혹독한 다이어트에 고통받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몸무게라는 키워드가 이제 너무 지겹다.
우리 모두 가볍게 생각해보면 몸무게보다 더욱 유쾌한 것들이 많이 보일 것 같다"고 했다.
외모 강박을 주제로 한 보디 호러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연 데미 무어는 이달 초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 "우린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잣대를 내려놓는다면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한물간 여배우 엘리자베스가 약물을 통해 젊음을 되찾으며 점차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마른 몸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인해 섭식장애뿐 아니라 월경불순, 무월경, 골다공증, 빈혈을 앓고 있는 젊은 여성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며 "극단적 다이어트는 기초대사량을 감소시켜 되레 살이 잘 찌는 체질이 되는 역효과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작은 옷 입어보기 챌린지에 대해 "일종의 놀이 문화로서 옷을 입어보고 도전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브랜드와 챌린지 문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남기고 생각을 공유하며 성숙한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winkit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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