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M&A로 큰손 부상한 일본기업…몸사리는 한국기업, 신사업보다 구조조정

우수민 기자(rsvp@mk.co.kr),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입력 : 2025.07.27 19:53:56
日기업, 저금리에 레버리지 유리
중소기업 M&A에 정부가 지원도
해외 인수가 과반 넘어 내수 탈피

韓은 자금조달 경쟁력 떨어지고
대미관세로 실적 불확실성 커져
상법 등 급격한 규제변화도 부담


[사진 = 연합뉴스]


# 지난 3월 Arm의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미국 반도체 설계사 암페어컴퓨팅을 약 65억달러를 들여 인수한다고 밝혔다. 암페어는 Arm 기반 데이터센터 중앙처리장치(CPU)를 설계하고 있어 향후 차세대 인공지능(AI) 인프라스트럭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 지난 2월 일본 4대 생명보험사 중 하나인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은 약 23억달러에 미국 리걸앤제너럴 보험 사업부를 인수한다고 알렸다. 일본 내 고령화·저금리 위기를 상쇄하기 위해 해외 보험 시장 개척으로 수익 안정화와 다변화를 꾀하는 구상이다.

최근 전 세계적인 인수·합병(M&A) 시장 침체 속에 일본 M&A 시장 성장을 견인한 요인은 구조적인 매물 공급·저가 매수 사이클 형성이 꼽힌다. 초저금리, 정부 주도 기업 지배구조 개혁, 인구 고령화라는 세 가지 축이 맞물린 결과다.



매도자 차원에서는 정부가 상호출자 해소를 주문하고 주주행동주의를 촉진하면서 저수익 사업은 물론 고수익 사업까지 매물로 출회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사에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현 방침’을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상장사 명단을 매월 공개하고 있다.

또한 일본 중소기업(SME) 경영자 연령 중 가장 높은 비중이 65~69세에 이르면서 승계형 매물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매수자 측면에선 일본 기준금리가 0.5% 수준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마련됐다. 2023년 외환법 개정으로 외국인직접투자(FDI) 심사도 간소화하며 사모펀드(PE) 관여 여지도 높아졌다.

정부 차원에서 사업승계·구조조정 M&A에 각종 세제·융자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청 승계 M&A 지원센터는 지난해 사상 최대의 성사 건수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저성장·고령화가 심화함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 M&A를 통해 성장을 모색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아웃바운드(해외 기업) M&A는 502억달러로, 인바운드(일본 기업) M&A(289억달러)의 두배 수준에 이르렀다. 섹터별로는 금융(249억달러), 정보기술(68억달러), 임의소비재(55억달러), 헬스케어(39억달러), 원자재(38억달러) 등의 순이었다.

이에 비해 연초 이후 국내 기업 주도 최대 M&A(자회사 거래 제외)로는 삼성전자의 독일 냉난방 공조기업 플랙트그룹 인수(17억달러), 웅진의 프리드라이프 인수(7억달러),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6억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해외 M&A 비중을 보이는 국가로 꼽히고 있다”며 “일본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차입비용, 정책(규제), 관세 관련 불안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거래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 이는 매도·매수자 간 가격 괴리를 심화시키고 장기간 해소되지 못하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거래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이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동안 한국의 기준금리는 여전히 3.25%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내 기업의 자금조달 경쟁력을 후퇴시키고 M&A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 상법, 자본시장과 같이 기업 경영에 직결되는 법안 개정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점도 국내에서 M&A와 같은 중요 결정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한국 대표는 “일본은 기본적으로 규제 변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있는 반면, 한국은 중차대한 법이 갑자기 바뀔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상존한다”고 꼬집었다.

이 가운데 대미(對美) 관세 리스크까지 고조되면서 기업들이 공격적인 인수 대신 구조조정을 우선시하려는 기조가 번지고 있다. 한 글로벌 투자은행(IB) 한국지사 고위 관계자는 “관세로 인해 실적 전망치의 근거가 전부 흐려진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계획이라는 걸 수립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탄식했다.

조정민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는 “주식시장 랠리로 매도 측 기대는 높아진 반면, 매수 측은 경기 둔화와 환율 변동 위험을 반영해 EV/EBITDA 멀티플(배수)을 낮게 제시하면서 가격 조율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국내 M&A 시장 내 딜 파이프라인은 많지만 대기 중인 상황으로 실제 클로징은 적어 거래율이 저조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내수 한계를 타개할 해외 M&A도 내리막을 걷고 있다. 크로스보더 M&A 전문 PEF 운용사인 SJL파트너스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 M&A 규모는 2021년 137억달러에서 지난해 69억달러로 반 토막 났다.

올 상반기 크로스보더 ‘빅딜’도 삼성전자의 플랙트그룹·젤스 인수와 크래프톤의 일본 광고사 ADK홀딩스 인수에 그쳤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하던 2020~2021년 당시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90억달러), 넷마블의 스핀엑스 인수(22억달러), 하이브의 이타카홀딩스 인수(11억달러), 현대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9억달러) 등이 이어졌던 것과 대조적이다.

임석정 SJL파트너스 대표는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려면 크로스보더 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단순히 외형 확장을 넘어 기술과 현지 네트워크 확보, 고부가가치 제품군 확대를 위한 전략적 M&A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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